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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보훈의 달 6

우리가 몰랐던 독립운동가 3

 

6월은 호국보훈의 달입니다


이런 호국보훈의 달 6월에 영화 박열이 개봉한다는 소식 들으셨나요? 


실제 독립운동가 '박열'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입니다1923년 관동대지진 이후 퍼진 괴소문으로 6천여 명의 무고한 조선인이 학살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관심을 돌릴 화젯거리가 필요했던 일본내각은 '불령사'를 조직해 항일운동을 하던 조선 청년 '박열'을 대역사건의 배후로 지목합니다. 계략을 눈치챈 '박열과 연인 가네코 후미코는 일본 황태자 폭탄 암살 계획을 자백하고, 사형까지 무릅쓴 재판을 시작합니다


영화는 이런 내용을 드라마틱하게 그려낼 예정이라고 하네요.


 

박열이라는 이름, 여러분들도 생소할 것 같습니다. 저도 영화가 개봉을 앞두었다는 뉴스를 보고서 처음 알게 되었으니까요. 이처럼 우리나라에는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들이 참 많습니다. ‘호국보훈의 달현충일을 맞이해 박열과 같이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 묵묵히 싸웠지만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만일 너의 생전에 독립을 보지 못하면 너의 자손에게 똑같은 유언을 하여 

내가 남긴 돈을 독립축하금으로 바치도록 하라.”


남자현 여사의 유언 






 

▲남자현 여사 이외에도 수많은 여성들이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독립군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남자현 여사입니다. 남자현 여사는 열아홉에 혼인한 남편 김영주가 1895년 을미 항일의병에 나가 전사한 뒤 10여 년간 3대 독자인 유복자를 돌보고 시부모를 봉양하며 만주로 가서 서로군정서에 가입합니다. 이후 농촌에 10여 개의 교회와 20여 개의 여자교육회를 설립하여 청년과 여성들에게 민족애와 항일정신을 가르쳤습니다.

 

1922년 남자현 여사는 국내에 들어와 군자금을 모금하고, 1925년에는 마코토(齋藤實) 조선 총독 암살을 기도하는 등 남성 못지않은 활약을 펼쳤습니다. 상하이임시정부의 안창호, 김동삼 등 투옥된 혁명가들에 대한 구명운동과 옥바라지에도 정성을 다했다고 합니다.

 

1932년 하얼빈에 온 국제연맹조사단에 일제 만행을 고발하고 나라 잃은 백성의 뜻을 알리겠다는 간절함으로 남자현 여사는 왼손 무명지 두 마디를 잘라 조선독립원이라 혈서를 쓰고 손가락과 같이 흰 수건에 싸서 전하려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일은 실패로 끝났죠.

 

193331일 남자현 여사는 일제의 만주국 건국행사장에서 이규동 등과 만주대사 육군대장 무토 노부요시(武藤信義)를 암살할 계획을 세웁니다. 남 여사는 남편의 옷을 가슴에 품고 걸인노파행색을 했습니다. 하지만 권총을 품에 숨긴 채 창춘(長春)으로 가다 일경에 잡히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모진 고문에 보름간 단식하며 옥중에서 투쟁하다, 병보석으로 나와 조선인 여관에서 독립은 정신에 있다라는 유언을 남기고 순국했습니다.

 

하루 만에 남강외인묘지에 묻힌 그녀를 훗날 하얼빈의 조선인들은 독립군의 어머니라고 비석을 세워 기렸습니다. 현재 그곳은 사라지고 국립묘지에 가묘만 남아 있다고 하네요. 정부는 남자현 여사의 희생을 기리며, 1962년 건국훈장인 대통령장을 추서했습니다. 영화 암살의 여성 저격수 안윤옥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던 남자현 여사. ‘독립은 정신으로 이루어지느니라라는 그녀의 유언을 마음속에 되새겨 보는 현충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고요히 침전된 어둠

만지울듯 무거웁고

밤은 바다보다 깊구나

홀로 헤아리는 이 맘은

험한 산길을 걷고

나의 꿈은 밤보다 깊어

호수군한 물소리를 뒤로

-리 별을 쳐다 쉬파람 분다

 

송몽규 - ‘’ (1938.08 조선일보 발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로 유명한 윤동주. 송몽규는 윤동주의 둘도 없는 친구였다.



지난해에 개봉한 영화 동주를 기억하시나요영화 동주에서 윤동주 만큼이나 인상 깊었던 인물이 바로 송몽규였습니다. 대중적으로 독립운동가송몽규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윤동주의 친구가 아니라 독립운동가송몽규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송몽규는 명동소학교를 졸업하여 은진중학교(恩眞中學校)에 입학한 꿈 많은 학생이었습니다. 영화 동주에서처럼 실제 송몽규도 매우 열정적인 학생이었던 것 같습니다. 송몽규는 돌연 은진학교를 중퇴하고 가출하여 자취를 감춥니다. 그 이유는 중국 난징으로 건너가 김구가 광복군의 무관을 양성하기 위해 중국중앙육군군관학교(中國中央陸軍軍官學校)에 설치한 한인특별반(韓人特別班)2기생으로 입학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곳에서 군사 훈련을 받으며 독립운동에 투신했습니다. 하지만 머지않아 본적지인 함경북도 웅기 경찰서로 강제 송환됩니다. 송몽규는 그 해 8월까지 치안유지법 위반과 살인 등의 혐의로 조사를 받다가 석방되었습니다.

 

그 후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한 송몽규는 윤동주, 백인준등과 한국 문학 동인지의 간행과 문학작품 품평회 등을 열며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활동을 합니다.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교토제국대학 사학과에 입학했으나 그 해 10월 교토의 도지샤대학으로 옮겼습니다.

 

송몽규는 교토에서도 윤동주, 3 고등학교생 고희욱(高熙旭) 등과 자주 모임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1943714일 한국인 유학생을 모아놓고 조선의 독립과 민족문화의 수호를 선동했다는 죄목으로 일본 특별고등경찰에 체포됩니다.


송몽규는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온갖 고초를 겪다 순국했다. 사진은 서울 서대문형무소.

 

송몽규는 재교토 조선인 학생 민족주의 그룹사건으로 기소되었습니다. 1944413일 그는 교토 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3년을 선고 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었습니다. 송몽규와 함께 수감되었던 윤동주는 1945216일 옥사(獄死)했고, 송몽규 역시 37일 옥중에서 순국했고,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습니다




 반도 26백만 동포여자 일어서라조선 독립의 때가 왔다

지금 와서 지원병이니 징병이니 하고 있다아아가련하도다."


김용창이 경성보험관리소 화장실 판자벽에 쓴 낙서




▲수많은 청년들이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김용창이라는 이름을 아시나요? 아마 생소하실 것 같은데요. 김용창도 일제강점기 시대의 독립운동가 중 한 명입니다. 김용창은 19268월 수원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가난 때문에 집을 떠나 서울에서 살면서 경성제국대학 법문학교 사환으로 근무했습니다. 이어 체신국 경성보험관리소 직원 등으로 근무, 야간에는 덕수공립상업학교에 다니며 공부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당시 서울은 조선 땅임에도 불구하고 조선인에 대한 차별이 극심했습니다. 이런 현실에 눈뜬 김용창은 역사서를 탐독하며 민족의식을 키웠습니다. 하지만 김용창은 아직 10대 소년에 불과했습니다. 그가 고민 끝에 결정한 자신만의 항일운동이 바로 낙서’였습니다. 1944년 김용창은 경성보험관리소 화장실 판자벽에 "반도 26백만 동포여. 자 일어서라! 조선 독립의 때가 왔다. 지금 와서 지원병이니 징병이니 하고 있다. 아아! 가련하도다!" 라는 내용의 글을 써 붙입니다. '낙서'를 통해 사람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려고 한 것이죠.


하지만 김용창은 경성보험관리소 1층 화장실 판자벽에 조선독립에 대한 소망과 일본 징병제도를 비난하는 글을 쓰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됩니다. 1944년 그는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6월을 선고받고 1945년 초 수감 중에 순국했습니다해방을 불과 4개월 앞둔 날이었습니다.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 김용창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되면서 정부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현충일 오전 10, 1분간 묵념 사이렌이 울린다는 사실 알고 있으시죠? 이번 현충일에는 우리 모두 1분만이라도 남자현, 송몽규, 김용창 같은 아직 우리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들을 위해 묵념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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