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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이 주는 설렘

손 글씨와 필름카메라




가끔 ‘보낼까?’, ‘말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뭐해?”라고 톡을 남겼습니다. 와! 1이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답은 한참동안 돌아오지 않습니다.


글쎄요, 이 상황 자체가 유쾌하지 못함이 사실입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만약 1이 없어지지 않았어도 지금처럼 답답했을까?’


문자메시지를 주로 이용했을 땐, 우리에게 ‘1’의 존재는 없었기 때문에 답장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기다림’이 주는 것은 답답함뿐이 아니었습니다. 



출처 : 픽사베이



바야흐로 2017년, 모든 것이 빠른 디지털 세상입니다.

디지털은 바람과 같습니다. 단지 손가락 몇 번만 튕기면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 문서를 주고받을 수 있고, 실시간으로 세상 모든 곳에 접속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많은 정보가 빠르게 들어오지만, 마찬가지로 빠르게 사라집니다. 예컨대 불과 몇 시간 전에 뉴스피드에서 본 내용을 다시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바람처럼 빨리 스쳐 지나가는 이 기억의 극단적 휘발성이 때때로 사람들을 허무하게 만듭니다.

 

당신의 오늘은 어땠나요? 무엇을 보고, 듣고, 말했나요? 종이로 인쇄한다면 교실 하나쯤은 거뜬히 채울 양인 것 같지만, 특별히 기억나는 것은 없지 않나요?

그렇다면 우리, 잠시 느려져 보아요.



[ 나의, 너의, 기억을 흘리다. - 손 편지 & 일기 ]



출처 : 픽사베이


기억은 공들인 시간에 비례한다고 생각합니다. “쉽게 얻어진 것은 쉽게 사라진다.”는 옛말처럼 우연히 순식간에 보고 지나간 데이터들은 오래 기억에 남지 않습니다. 위의 SNS 뉴스피드가 그 예입니다. 손편지나 일기는 그 반대의 경우겠죠.






컴퓨터와 달리 쉽게 수정할 수도 없기 때문에 더 많은 시간을 들여 무슨 말을 어떻게 쓸까, 글씨체가 거슬리지는 않을까 등 숱한 고민을 거듭하며 잉크를 흘러갑니다.


서랍 속의 편지엔 편지를 준 사람이 고민하며 여러분을 생각했던 시간과 받은 날의 기억이 함께 담겨있기에 기말고사 프린트처럼 한 번 읽고 버리지 못합니다. “오늘은”으로 시작해서 “참 좋았다.”로 끝맺어지는 초등학생 시절의 일기일지라도 그 일기장엔 유년의 순수함이 남아있습니다.



출처 : Flickr



한때 최첨단 데이터 저장 장치였던 플로피디스크는 지금 시대의 어느 컴퓨터에서도 쓸 수 없습니다. 불과 20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반면 조선왕조실록 같은 지면 자료들은 수백 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읽을 수 있습니다. 종이 위에 적은 여러분의 시간은 버리지만 않는다면, 오래도록 남아있을 것입니다. 


말로 전하기 힘든 마음이, 매일 쓰지 못하더라도 꼭 기억하고 싶은 것이 생기는 날이 있다면 펜을 잡고 종이 위에 여러분의 시간을 담아보세요.




출처 : 직접촬영



[ 보이지 않는 선명함 - 필름사진 ]



베낄 사(寫)에 참 진(眞)자를 합해 ‘사진(寫眞)’이라는 단어가 생겼습니다. 다시 말해, 사진은 있는 것을 베끼는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어느 곳에서든 눈에 보이는 것을 베끼고, 베낀 그것을 단 몇 초 만에 지구 모든 사람과 공유합니다. 그런데, 며칠 가지 않아 그때의 감흥은 찾을 수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쉽게 찍고, 바로 확인한 후 삭제하는 것이 가능한 점은 디지털 사진의 특징입니다. 별도의 비용이 들지 않습니다. “남는 것은 사진이다.”라는 말이 뇌리에 너무 깊게 박힌 나머지, 추억을 기억하는 방법으로 사진을 ‘남긴 것’이 아니라 사진 자체가 주가 되어 사진을 ‘건졌기’ 때문입니다.





디지털 사진이 널리 보급됨에 따라 필름 전문 제조사는 문을 닫았고, 필름 사진을 현상해주는 사진관은 거의 문을 닫았습니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사진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필름카메라(이하 필카)는 더욱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이 이유는 또 무엇일까요?


필카가 매력적인 이유는 볼 수 없음에 있습니다.



출처 : 직접촬영



필카는 디지털 사진과 달리 찍은 사진을 바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 내가 찍은 사진이 어떻게 나올까 궁금하지만, 어차피 볼 수 없으니 다음에 찍을 사진에 집중해서 한 롤을 다 쓸 때까지 설레는 맘으로 셔터를 누릅니다. 또한, 갈수록 비싸지는 필름 가격과 현상 및 스캔 비용으로 인해 한 장 한 장을 더욱 많은 신경을 써가며 찍게 됩니다.


“드르륵”하며 필름 감기는 소리, 장전 레버를 돌릴 때의 느낌, 필름을 되감을 때 눈앞으로 스쳐 지나가는 사진을 찍을 때의 풍경들! 필카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함이죠. 


일주일 전 담벼락에 쓴 글은 내가 그때 왜 그런 글을 썼는지, 혹은 그걸 썼다는 사실조차 기억나지 않는 것과 달리 학창시절 수련회 때 찍은 사진을 볼 땐 그 시절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선명하게 퍼지는 듯합니다. 당장 볼 수 없기에 ‘건진 것’ 아닌, ‘남김’이 가능한 필름 사진은 더 오랜 시간 여러분의 추억을 선명하게 보여줄 것입니다.



[ 느림이 주는 설렘, 아날로그 ]





  “우리는 시간을 절약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인생이 돌아가는 속도를 과거보다 열 배 빠르게 만들었다.

그래서 우리의 일상에는 불안과 걱정이 넘쳐난다.”

- 유발하라리 「사피엔스」 중



디지털의 발달 덕에 업무 효율성은 비약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이를테면 과거에는 5시간 걸릴 일을 1시간 만에 끝낼 수 있게 됐죠. 그러나 현대인에게 남은 4시간의 여유가 생기지는 못했습니다. 과거였다면 내일 했을 일을 오늘로 앞당겼고, 이렇게 할 일은 계속 쌓이며 여유라는 단어는 현실에서 공감할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고, 디지털을 포기하기에 우린 너무 길들여졌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상태를 ‘낯설다’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느림’은 이제 우리에게 ‘낯선 것’으로 느껴지죠. 그러나 좋아하는 사람에게 처음 받았던, 떨리는 마음과 손으로 적던 손편지, 장난감을 갖고 싶어 일부러 눈물 자국 한 방울 똑 떨어뜨리고 엄마에게 보란 듯이 책상 위에 펼쳐놓았던 일기장, 유치원 재롱잔치 때 사진, 느림이 당연하던 그 시간의 기억이 남아있는 한 느림은 지난 시간을 떠올리게 하며 당신께 설렘을 줄 것입니다.


오늘, 느려져보시는 것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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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취생 2017.02.25 20:25
    저도 다른건 다 버려도 누군가가 써준 손편지는 버리지못하고 차곡차곡 쌓아두는것같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BlogIcon 한국전력 2017.02.27 10:05 신고
    요즘 디지털 세상이지만 아날로그의 감성은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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