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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슨의 발명의 역사를 돌아보다 [1부] 

강릉 에디슨 과학박물관

 



[에디슨, 그는 어떤 사람인가?]



토머스 에디슨


에디슨(Thomas Alva Edison) 그는 1847년 2월 11일 오하이오주(州) 밀란에서 태어났습니다. 초등학교 입학 후 초등학교 선생님께서는 평소 궁금증이 많아 질문이 잦았던 에디슨을 산만한 아이라 칭합니다. 입학한 지 3개월 뒤 에디슨은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서 그의 어머니에게 교육을 받습니다. 집안이 가난하였기 때문에 12세 때부터 철도에서 신문·과자 등을 팔면서도, 시간을 절약하기 위하여 화물차 안으로 실험실을 옮기며 실험에 열중하였습니다. 15세 때 역장 집 아이의 생명을 구해준 답례로 전신술을 배우게 되어 1869년까지 미국·캐나다의 여러 곳에서 전신수로서 일을 하게 됩니다. 



 토머스 에디슨 ⓒ이보영 기자


발명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했던 그는 전신수의 일을 그만두고 자신의 연구에 몰두합니다. 1868년 전기 투표기록기를 발명하여 최초의 특허를 받게 됩니다. 이 후 탄소전화기, 축음기, 백열전구, 영화 촬영기, 영사기 등 특허 수가 1000종을 넘을 정도로 많은 발명을 하였고 그가 발명을 위해 기록한 메모노트는 3200권에 달합니다. 1931년 그는 마지막 까지도 연구를 하다 생애를 마감하였습니다.




[강릉 에디슨 과학박물관]



참소리 축음기 박물관과 에디슨 박물관 ⓒ이보영 기자


강릉 에디슨 과학박물관은 1982년 참소리 방으로 시작하여 1992년 11월 28일 참소리 축음기, 에디슨 과학박물관으로 정식 개관하였습니다. 참소리 축음기 박물관과 에디슨 과학박물관은 함께 나란히 위치하고 있으며 위치는 ‘강원도 강릉시 경포로 393’입니다. 그 규모는 약 400평에 이르며 연간 50만 명이 방문하는 국내 최대 사립 박물관입니다.


일반 12,000원, 중고생 10,000원의 입장료를 내고 입장하면 박물관의 다양한 전시물을 큐레이터 분들께서 자세히 설명해 주십니다.



참소리 축음기 박물관내부 ⓒ이보영 기자


참소리 축음기 박물관은 뮤직박스, 축음기, 라디오 TV등 약 2500점이 전시되어 있으며 축음기 시대의 아날로그음악에서 현대의 DVD, 디지털 음악까지 소리의 역사가 담긴 박물관입니다.



에디슨 과학박물관 내부 ⓒ이보영 기자


에디슨 과학박물관은 에디슨의 3,500여점 발명품 중 가장 대표적 3대 발명품인 축음기, 전구, 영사기를 비롯한 에디슨 발명품과 유품 등 2,000여점이 전시된 세계 최대 에디슨 과학박물관입니다. 현재 전시공간이 부족하여 전시되지 못하고 수장고에 보관중인 소장품들은 년 3~4회 교환 전시를 통해 관람객에게 선보이고 있습니다. 


에디슨 과학박물관 1전시관(1층)은 에디슨의 3대 대표적 발명품인 축음기, 전구 영사기가 소리 빛 영상의 세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2전시관(2층)은 에디슨이 생전 발명 및 개발한 각종 생활용품 및 가전제품, 주방 기기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대표적 전시품으로는 에디슨 일렉트릭 팬, 전화기, 선풍기, 와플 기계, 전기냉장고, 전기세탁기 등이 있습니다. 



경포 호수의 모습 ⓒ이보영 기자


박물관 바로 앞에는 강릉 최고의 명소인 경포 호수가 위치하고 있으니 박물관 관람 후 경포 호수를 돌아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에디슨의 대표적인 3대 발명품]



에디슨의 대표적인 3대 발명품인 축음기, 전구, 영사기를 보다 자세히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소리를 저장하는 축음기입니다. 



(좌) 나팔축음기, (우) 내장형축음기 ⓒ이보영 기자


축음기가 발명된 1877년 12월, 우리는 역사상 최초로 소리를 재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축음기는 나팔과 내장형으로 구분되어집니다.



 소리를 기록한 원통 ⓒ이보영 기자


초기의 축음기는 구리로 만든 원통에 소리를 기록하고, 원통을 회전시키면서 바늘과 진동판을 써서 소리를 재생시키는 장치였습니다. 에디슨이 축음기를 통해 자신이 직접 부른 노래를 청중에게 들려주었을 때, 일부는 에디슨이 장난을 치는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사람들의 반응은 대단하였습니다. 축음기의 발명으로 인해 소리가 시간과 장소의 한계를 벗어나게 되면서 언제 어디서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오디오 문화가 시작될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 빛을 밝히는 전구입니다.



전구 ⓒ이보영 기자


전구는 필라멘트에 전기를 보내 열과 빛이 나는 원리를 이용하여 주위를 밝히는 기구입니다.

전구에 대한 구상은 최초로 데이비가 아크 방전을 통해 고열과 강력한 빛을 내는 아크등이 시초였습니다. 하지만 아크등은 빛이 지나치게 강하고 너무 빨리 타버려 실용성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점을 보완하고 실용화한 것이 에디슨입니다. 



에디슨이 개발한 전구 모습 ⓒ이보영 기자


에디슨은 수은 배기 펌프의 개량과 탄소필라멘트의 채용으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여 1879년 10월 40시간 동안 빛을 내는 탄소 필라멘트 전구 실험에 성공하고 다음 해에 1500시간을 견디는 전구를 만들어내면서 실용성의 한계를 극복했습니다. 


세 번째, 움직이는 화면을 만드는 영사기입니다.



영사기와 영사기의 원리를 설명하는 모습 ⓒ이보영 기자


1889년 에디슨의 영사기 키네토스코프(Kinetoscope)의 발명은 오늘날 영화 산업의 기초를 다졌습니다.

 


최초의 영사기 키네토스코프와 에디슨이 만든 영화의 한 장면 ⓒ이보영 기자


영사기인 키네토스코프(Kinetoscope)는 긴 필름에 연속된 정지화면을 찍은 후, 그 필름을 처음부터 빠르게 돌려 움직이는 듯 한 효과를 주는 원리입니다. 초기의 영사기는 약 30초 동안 활동사진의 내용을 들여다 볼 수 있을 뿐이었고 필름을 자동장치로 회전시켜 아래에 있는 전구의 빛을 통해 위에서 확대경으로 화면을 들여다보도록 되어있습니다. 이 ‘들여다보기’ 영화는 한사람밖에 볼 수 없었지만 흥행용으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에디슨의 발명의 역사를 돌아보다.’는 2부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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