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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과 ‘인간다움’의 무게, 그 가운데서




‘생명’이라는 가치는 모두에게 가장 중요합니다. 동시에 사람들은 모두 ‘인간다움' 권리가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답게 사는 것’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최우선적으로 보장되어야 합니다.

당연한 상기의 명제가 명료하게 들어맞기 어려운 예외적인 상황이 단 하나 존재합니다. ‘죽음’이라는 문제를 앞에 두고 논의가 끊이지 않는 ‘존엄사’입니다. 존엄사에 관한 의견이 전세계적으로 분분한 가운데, 우리나라는 올해 초 국회에서 웰다잉법(Well-Dying)법을 통과시키며 존엄사에 대한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지금부터 웰다잉법이란 무엇인지, 우리는 존엄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보려 합니다. 



[웰다잉 법(Well-dying 法)]


▲대한민국 국회의사당


지난 2월 3일 제정됐고, 유예기간을 거쳐 시행될 예정인 정식명칭 ‘호스피스 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약칭 ‘환자연명의료 결정법’이라 하는 웰다잉법(=존엄사법). 이 법의 의의는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자기의 결정이나 가족의 동의로 연명치료를 받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특정한 경우에 한해 본인 또는 가족이 죽음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처음 말했듯 ‘생명’은 가장 중요한 가치로 우선되어야 합니다. 이를 누군가의 의도로 끊을 수 있다는 것이 섬뜩하고 바람직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인간답기’를 원해 내리는 결정임을 고려하면 성급하게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원론적인 접근만으로는 바른 결정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이젠 진짜 세상의 이야기를 들여다볼 차례입니다. 



[라몬 삼페드로 & 매튜 도넬리]


ⓒ네이버 영화


첫 번째로 살펴볼 인물은 라몬 삼페드로라는 분입니다. 그는 20대 때 사고로 목뼈가 골절된 후 전신마비 상태로 30년을 침대 위에서 살았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직접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기에 식사와 대소변을 비롯한 아주 기초적인 행위까지 타인에게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그런 현실이 비참하고 수치스러운 지옥과 다름없다고 생각했으며, 그런 지옥에서 탈출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런 그가 직접 할 수 있는 건 굶는 것 밖에 없었지만, 그는 그것이 존엄하지 못하다고 여겨 안락사를 해줄 것을 요청합니다. 하지만 그가 살던 국가는 국민 대부분이 가톨릭 신자인 스페인. 그의 바람은 신에 대한 모욕으로 치부되어 묵살당하고 맙니다.  

그는 저서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내가 살아있는 것이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인간은 오감으로 기쁨을 느끼고 연대감을 느끼고 누군가를 사랑하며 살아가는데 난 생물학적으로 살아있을 뿐이지 내 삶은 고통일 뿐이다. 난 죽음을 선택하고 싶다. 굶어서 죽는 것은 존엄하지 않으므로 인간의 품위를 잃지 않고 약물로 죽고싶다.“


“사회가 자유롭고 자발적으로 죽을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거부하면서 아무도 원하지 않는 고통을 당할 의무는 강제하는 것은 아주 악덕한 처사가 아닌가요? 권위를 유지하려는 다수의 이익 때문에 개인에게 고통을 견디라는 의무가 주어져야 하나요? 그래서 개인이 악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없다는 건가요?”


그는 그의 꿈을 위해 소송을 제기하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비밀리에 여자친구의 도움을 받아 그의 꿈을 따라 하늘로 돌아갑니다. 그의 이야기는 당시 사회적으로 논란을 불러 일으켰고, <씨 인사이드>라는 영화를 통해서도 알려지게 됩니다.




두 번째 인물은 매튜 도넬리라는 인물입니다. 30년 이상 방사선을 다뤘던 물리학자 매튜 도넬리는 X-레이에 지나치게 노출된 결과 암에 걸렸을 뿐만 아니라 턱의 일부, 윗입술, 코와 왼손을 잃었고 눈까지 실명했습니다. 의사는 그에게 1년 정도의 시간이 남았다고 진단했지만 그에게는 희망이 없었고, 극심한 고통만이 남았을 뿐이었습니다. 그런 시간들을 견뎌야할 이유가 매튜에게는 없었습니다. 그는 차라리 죽음을 원했고, 그의 세 형제들에게 그의 뜻을 전했지만 두 형제는 그의 바람을 들어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명인 해롤드 도넬리는 고통에 신음하는 매튜를 지켜볼 수 없어 권총으로 그를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주고 본인은 살인죄로 처벌을 받습니다.


이렇듯 회생이 불가능해 희망이 없는 경우의 환자들의 경우 생명과 의학적 치료 사이에서 딜레마가 발생합니다.



[ 선택의 주체 & 현실적 문제 ]



97년 ‘보라매 병원’ 사건을 아시나요?

사망가능성이 높던 김모씨가 위독해진 후 자가호흡이 어려워져 인공호흡기에 의존하자 김모씨의 부인은 중환자실의 치료비가 너무 비싸니 퇴원을 시켜달라고 요청합니다. 병원은 거절하였지만 부인은 책임을 묻지 않겠으니 김모씨의 퇴원을 재청하고, 병원은 이를 받아들입니다.

예상대로 환자는 사망했습니다. 사건은 이제부터 시작됩니다. 환자의 동생은 부인과 의사를 고소하고, 7년간의 법정공방 끝에 ‘부작위에 의한 살인’을 인정받아 부인은 살인죄로, 담당의사는 살인 방조죄로 처벌을 받았습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본인의 의견이 가장 중요시돼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본인의 의지를 밝힐 수 없을 땐 차 순위로 그 가족들이 대신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 찾아오죠. 생명의 존엄 문제와는 별개로, 연명치료에 대한 금전적인 문제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올해 초 제정된 웰다잉법의 허용 범위는 1. 회생가능이 없고 2.치료에도 불구하고 회복되지 아니하며 3.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되어 사망에 임박한 상태의 환자 일 경우입니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가능성’이 없는 경우인데요. 평범한 서민의 경우 연명치료를 진행할수록 금전적 문제로 무너질 가능성이 높은 게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환자의 존엄과 남은 가족의 경제적 상태를 고려하지 않은 채 연명의료를 강행해야 하는 것이 옳은지는 재고해야 합니다.


본인의 의지, 인간의 존엄, 경제적 문제 등 여러 가지를 복합적으로 고려하며 그에 따른 최선의 선택을 찾아가는 과정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웰다잉법은 이런 과정을 만들어가기 위한 초석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의료, 법, 그리고 종교. 그들의 이야기 ]

 

존엄사는 웰다잉법과 같은 ‘법’적인 정당성이 없으면 실행될 수 없고, 치료를 담당하는 ‘의료계’에서의 입장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더불어 생명을 다루는 주제인 만큼 근본적으로 윤리적 고민을 배제해서는 안되기에 ‘종교’의 입장도 충분히 고려해봐야합니다.

때문에, 저는 각 부분에서 현재 일하거나 공부 중인 분들의 의견을 들어봤습니다.




의료‧의술 상징으로 쓰이는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


“수명 자체에 포커스를 두면, 다시 말해 숨을 쉬냐 안쉬냐에 주안을 두면 웰다잉법과 같은 법안을 절대 통과시킬 수 없다. 그러나 사람이 존중을 받느냐, 받지 못하느냐를 두고 생각해본다는 얘기는 다르다. 

병원에서 연명치료를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환자의 존엄은 없는 것 같다. 환자의 의식이 없는데 코로 음식을 주입하고 그것이 안되면 배로 넣는다. 또한, (환자가) 숨을 못쉬면 강제로 목에 구멍을 내서 억지로 숨을 쉬게 한다. 물론 그들의 의식이 없기에 말은 못하지만 아무리 뇌사인 상태라도 반응이라는 것은 존재한다.

예컨대 목에 구멍이 나 있으면 항상 오픈된 상태라서 가래가 끓어 석션을 엄청나게 해야한다. (환자의) 얼굴이 시뻘게지도록 말이다. 그것을 하지 않는다면 죽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을 하루에도 수십 번을 해야한다. 더불어 관을 갈아주는 교체주기가 있는데 (관을)빼고나면 뚫은 구멍이 다 보인다. 과연 그것이 그 사람이 존엄한 모습일까?

나아가 중환자실에서 환자의 심장이 기능을 못하지만 생명이 있으면 심장이 하는 일을 기계가 할 수 있도록 벤틸레이터의 설정을 바꾼다. 이것이 정말 의미가 있는 것이라 생각하나?“ 

- K양(서울 S노인전문병원 간호사 )   


의료인으로서 실제 환자들을 접하고 있는 간호사 K양의 말을 듣고 상상해보니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위해서는 ‘숨을 붙여놓는 것’과 ‘존엄’이라는 선택지 중 어느 곳에 무게를 두는가가 중요함을 알 수 있었습니다.  

현재로서는 병원 및 환자의 자의적 판단 아래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없습니다. 환자와 병원의 동의가 있다하더라도 합법적으로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길은 아직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웰다잉법처럼 존엄사와 관련한 법을 만듦에 있어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법의 여신이라고도 하며, 법원, 변호사회관, 법과대학 등의 장소에서 상징으로 볼 수 있는 ‘정의의 여신’ Justitia


“(관련법을 제정함에 있어)매우 민감한 문제이기에 국민의 의견을 우선적으로 참고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대한민국은 많은 사람들이 개인적 선택의 자유보다는 도덕을 더 중요시하기에 개인의 선택과 생명에 대한 존엄성 그리고 도덕을 동시에 품을 수 있는 법안을 제시해야 하고, 그를 위해선 각 사상이 타협할 수 있는 선을 찾는게 중요한 과제다.” 

-B군(Emory University School of Law / J.D Course(Juris Doctor, 법학 박사))


B군은 인터뷰와 더불어 미국에서의 존엄사와 관련한 자료를 추가적으로 보내주었습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Physician-assisted suicide’, 우리말로 ‘의사조력자살’에 관해 현재 ▲워싱턴, ▲오리건, ▲캘리포니아, ▲버몬트 이상 4개 주(州)에서 법으로 제정하여 합법임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몬타나주와 뉴멕시코 주에서는 주 대법원(State Supreme Court)이 존엄사를 택할 수 있는 환자의 권리를 인정하지만, 보수단체의 반대로 인해 법안으로는 제정하지는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 합니다. 그러나 미국 내에서 동성 결혼이 헌법상의 권리로 인정된 것에서 볼 수 있듯, 과거보다 진일보한 자유주의적 법안이 통과되는 경우가 늘어나는 시대적 흐름을 고려하자면 앞으로 더 많은 주에서 ‘의사조력자살’을 합법화 할 것이라 예상한다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생명의 가치는 어느 나라에서 생각하느냐를 떠나 중요한 것이 사실이지만, B군의 말처럼 특정국가 국민들의 가치관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게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존엄사에 관한 법을 제정할 때 국민적 합의가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그의 말은 일리가 있습니다.



“카톨릭에서는 인간의 죽음에 관련하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으며 하나님의 숨결로써 생명을 받은 거룩한 존재라고 여긴다. 그리고 이것은 불변의 진리라서 누구도 헤치거나 빼앗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낙태, 자살, 안락사 등의 문제에 대해서 반대한다.

하지만 개신교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물론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부정하지 않지만, 개신교는 개인의 의사 결정 및 자유의지를 존중한다.

하나님의 섭리와 뜻 가운데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선물하셨기에 죽음에 관련되어 어느 정도 자신의 의견은 중요하다 생각한다.” 

- K군( 광주 M교회 전도사 )


인류에게 존재하는 종교가 하나가 아니기에, 또한 카톨릭과 개신교라는 분류 외에 개신교에서도 종파에 따라 교육방향이 다르기에 각자 생각하는 바가 다를 수 있습니다. 때문에 K군의 말이 개신교의, 더 크게는 종교인으로서의 입장 전체를 대변한다고 보기에는 무리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말을 토대로 고민해보자면 종교적 입장에서 보더라도 故 라몬 삼페드로 씨의 바람을 묵살시킨무조건적인 반대와는 거리가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 그들의 이야기 No.2, 사전연명의료의향서 ]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이하 의향서)란 갑작스레 찾아온 사고로 인해 중환자실에 바로 갈 경우처럼, 연명치료거부를 자신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순간을 대비해 미리 연명치료거부의향서를 작성해놓는 것인데요. 이것은 구두결정이 아닐 뿐더러, 본인의 의사를 가장 확실히 밝히는 방법인만큼 법적인 효력이 있습니다.

인터뷰해주신 분들께선 의향서에 대한 견해도 말씀해주셨습니다.


“연명치료를 하던 중 깨어나는 기적적인 경우도 극소수지만 있기는 하다. 때문에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더 중요하다. 그것은 자신이 굳이 연명치료를 받고싶지 않다는 의지를 사전에 밝힌 것이고, 그것은 개인의 가치 차이인 만큼 존중해줘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난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  K양(서울 S노인전문병원 간호사)  


“반드시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있어야 한다. 가족의 동의만 갖고서는 본인의 의사결정이 드러나지 않는다.” 

- K군( 광주 M교회 전도사)


상기 두 분은 본인의 의지가 핵심이고, 의향서는 그를 드러내주는 좋은 수단이라 생각함을 알 수 있었습니다. 



[ 생명과 인간의 존엄이라는 추가 올려진 저울 ]



지금까지 웰다잉법과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대해 알아보며 존엄사와 관련한 현실에서의 사례들과 각 분야의 입장을 들었습니다.


‘생명’이라는 것을 주제로 두고 실제적으로 적용되는 사안인만큼 그 어느것보다 조심스레 접근해야 하겠고, 다소 느릴지언정 우리가 내릴 수 있는 최선이 무엇인가 끊임없이 고뇌하며 전진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글을 다 읽으셨다면, 머릿속에 한 가지 그림을 그려보셨으면 합니다. 여러분의 손에는 양쪽에 추를 올려놓을 수 있는 저울이 있습니다. 한쪽에는 ‘호흡’을, 다른 한 쪽에는 ‘인간의 존엄 및 인간다움’ 을 올려봅시다.

자, 여러분의 손에 들린 그 저울에서는 어느 쪽이 더 내려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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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리 2016.10.25 15:29 신고
    사회적으로 민감한 문제를 균형있고 지루하지 않게 정리해줘서 잘 읽고 갑니다.
    특히 사회적으로 이슈화되었던 기사뿐만아니라 관련업계 종사자들의 인터뷰까지 곁들여
    다양한 생각을 접하고 고민할 수 있게 해주네요.
    비단 죽음과 삶의 경계선에 있지 않더라고 현대 사회에서 나의 "삶"에 관해서 생각해 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