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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 그들의 사색(思索)





시간이 언제 흘렀는지도 모르게 9월이 되었습니다. 대학생들에겐 오지 않을 것 같던 반갑지 않은 손님, ‘개강’이 찾아왔죠. 동시에 고등학생들에겐 본격적인 입시 시즌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입시시절을 돌아보면 참 많은 학생들이 자신의 꿈을 확실히 알지 못한 채 대학의 문턱을 향했습니다. 그들이자 우리였던 그날의 시선을 떠올려보면 꿈보다 눈 앞의 학교 이름에 더 신경을 썼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왜 그래야 했을까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학벌'이란 근본적인 이유에 도달할 거라 생각합니다.


학벌이란 개념이 인생을 어떻게 왜곡시키는지 돌아보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 ,지금부터 학벌에 대한 고민과 적정선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 고민을 함께 하기 위해 특별히 현재 국내외 7개 학교([가나다순]성균관대학교, 연세대학교, 조선대학교, 한양대학교, 호남대학교 / William & Mary College, Parsons Newschool For Design)에서 수학중인 학생들의 의견을 들어보았습니다. 


학벌, 그들의 사색. 그 첫 번째 상자를 열어보겠습니다.



[肯 - 터널 끝 밝은 햇빛]




인터뷰한 7개교 학생들에게 학벌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습니다.


“학벌은 개인의 노력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해요. 학창생활동안 열심히 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K군 (연세대학교)


초·중·고등학교 총 12년의 교육의 최종 도달점이 대학교의 입학허가서라고 단언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그 짧지 않은 시간 동안의 노력이 없다면 원하는 이름의 입학허가서는 받을 수 없는 것이 사실이죠. 그렇게 생각해보면 소위 명문대학교의 학생들이 학벌을 통해 얻는 것이 정당한 보상이란 것 또한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번에 인터뷰했던 7명의 학생이 모든 학생의 의견을 대표한다고 할 수 는 없겠지만, 인터뷰에 응해준 7명 전원은 현재 우리가 부르는 명문대학교의 학생인가의 여부와 상관없이 K군이 말한 의견과 비슷한 답변을 주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말하는 보상이라는 것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 일까요?




“과잠 등판에 고딕체로 당당히 오바로크된 대학의 영문 이름을 보고 선망과 동경의 눈빛을 보내는 편이었다.” - L군(호남대학교)


학교의 이름이 뛰어난 곳에 입학한 학생들이 가장 먼저 누릴 수 있는 것은 바로 자신 학교에 대한 소속감과 그에 따른 자부심일 것입니다.

‘과잠’이라 부르는 학과 점퍼는 자신 학교에 대한 자부심을 표현하는 방법 중 제일 먼저 눈에 띄는 방법입니다. ‘과잠’으로 인해 생기는 괴리는 별개로, 인터넷 중고 매매 사이트에서 명문대학교의 과잠이 원가의 몇 배로 비싸게 게시되어도 금방 팔리는 것은 그들의 자부심을 향해 동경의 눈빛을 보냈다던 L군의 마음과 같은 생각에서 기인할 것입니다.




“학벌은 소속감을 중시 여기는 한국의 풍토에 맞춰 성장한 사회의식이라고 생각한다. 소속감을 고취시키면서 동시에 선후배간의 결속력도 증진시키는 긍정적인 역할이 있다.” - L군(조선대학교)


상기 L군의 말마따나 학벌이라는 것도 그 시작은 사람간의 유대에서 시작됩니다. 굳이 학연(學緣)이 아니라도 지연(地緣) 등 우리사회는 연(緣)을 참 중요시 생각합니다. 이러한 연을 통한 유대를 기본으로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자리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바로 학벌입니다. 


“같은(학교의) 인맥이 있다면 도움이 될 것 같다. 사실이 그렇지않나.

회사에서의 같은 대학 출신의 어른·동기‧후임이 있다면 더 챙겨주게 되는게 사람마음인거다.“

-H군(성균관대학교)


‘보상’이란 개념의 연장으로 보자면, 사회 곳곳에 자리한 좋은 대학 출신의 좋은 선배들이 후배를 이끌어주는 것은 좋은 대학에 입학한 그들에게 수여되는 특별한 ‘메달’과 같지않을까 싶습니다. 

한양대학교에 재학 중인 P군은 상기의 관점으로, 학벌이 자신에게 있어선 (졸업 후) 아무래도 누굴 만나도 부정적인 면보다는 긍정적인 면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답변해주었습니다.

이렇듯, 학벌은 누군가에게 오랜시간 달려온 터널 끝에서 비추는 눈부신 빛이 아닐까 싶습니다.



[不  - 정해진 결말의 시작이었을까] 




터널의 끝에 가까워질수록 운전자를 향한 빛은 점점 밝아집니다. 하지만 터널을 나왔을 때 그 빛이 비추고 있던 것이 항상 모두가 원하던 목적지가 되지 않는다는 게 씁쓸한 현실입니다.  빛이 비추는 곳엔 언제나 그림자가 생기듯이, 소수의 상위 학교에 속하지 못한 다수의 사람들에게는 학벌이 짙은 그늘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한국사회에서 ‘좋은’ 학벌은 필수 상황이 되었고,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학벌이 더 이상 개인의 노력이나 능력을 증명한다기보다 자기 과시의 도구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 K군(Parsons Newschool For Design)


K군의 말처럼, 학벌에 관해 발생하는 첫 번째 문제는 순기능적 역할이 잘못된 형태로 변하는 것입니다. 보상으로서의 인정과 찬사가 자신만큼 이루지 못한 타인을 무시해도 좋다는  말은 아니거든요. 하지만 그 둘을 같은 것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 공공연하게 교명(校名)으로 사람을 먼저 판단하는 경우까지 사회에 만연한 게 현실입니다.

   



학벌의 가치가 인정받아야 학창시절의 노력이 더욱 보람 있겠죠. 하지만 대학이 인생의 전부는 아닌데 고등학교 성적의 결과가 평생을 따라다니며 누군가에게 한계치가 된다면 그것은 문제가 아닐까합니다.  


“학벌이란 첫 인상같은게 아닐까. 문제는, 열어봤을 때 (타자의 기대치와는) 다를 수 있다.예컨대, 소개팅에서 만난 이성의 첫 인상이 좋았어도 겪어보며 느끼는 것은 다른 것처럼···첫 인상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이유가 되서는 안된다.“ - H군(성균관대학교)


H군은 인터뷰 중 자신의 학창시절 얘기를 하나 들려주었습니다.

자신이 다니던 학교는 자신이 1기였는데, 초대 교장선생님은 S대학교 출신이었습니다. 그가 생각하기에 의심스러웠던 것은, 당시 임용된 일반 교사들도 전부 S대 출신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는 상기와 같은상황이라면 인사선정에 있어서 ‘학교이름을 1순위로 보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나? 라 덧붙였습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이 이럴 때 쓰여도 좋은 예시가 될 수 있지 않을까합니다.

유대감으로 시작했던 선후배관계가 배타적인 결과를 불러일으킨다면, 누군가에게는 한계점이 될 수 있고, 그것은 ‘지나친’ 일이 되어 하나의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교명(校名), 삶 전체를 보여주는 그림인가]




여러 매체를 통해 듣자면 대한민국이 유달리 숫자에 민감한 건 일면 맞는 말인 것 같지만, 그런 문화 자체가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에서는 무엇이 다른 것 일까요? 


“미국에도 학벌주의가 분명 있긴 합니다. 대학교는 물론 사립 고등학교 순위도 매년 여러 유명 매체를 통해 발표됩니다. 다만, 모든 미국인들이 하버드나 예일 같은 명문대 입학을 꿈꾸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가문 대대로 명문 사립 고등학교와 명문대를 나온, 소위말하는 상류층(?)은 확실히 학벌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느껴지지만, 다수의 평범한 미국인들은 굳이 아이비리그를 고집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물론 예외는 있겠지만, 본인이 살고있는 주(州)의 있는 대학을 나와도 해당 주에서 사는데 지장이 없다고 믿기에 굳이 비싼 학비를 내고 명문 사립대를 갈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데서 기인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일반적인 사고와의 차이라면) 평범한 주립대를 나왔다고 해서 "하버드는 꿈도 못꿨을 성적이였나 보군" 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것 같네요.” - N양 (William & Mary College) 


N양의 말을 토대로 보자면, 순위에 대한 개념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존재합니다. 다만, 그것이 어떤 사람의 수준을 판단하는 척도로서 적용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N양은 한국의 학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덧붙였습니다.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는 삶에서 굉장히 작은 부분이라고 생각하는데 본인이 학교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냐보다 이름에 끌려가고, 또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사회구조가 안타까운것 같습니다. 열정이 가득한 20대 초반의 학생들이 학교 이름 때문에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껴서 본인의 날개를 펼치지 못하는 것이 많이 안타깝고 안쓰럽습니다.”




“디자인을 전공으로 하는 입장에서 보았을 때, 미국 같은 경우 면접을 보는 상황이면 학생의 인품, 설득력, 포트폴리오(작업)의 질, 어떻게 지금의 상황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묻는 반면, 한국의 경우 학교의 이름과 성적으로 개개인을 먼저 평가하고 시작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한국의 회사들이 고용할 때 개인의 역량보다 학교 이름만을 본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지만, 미국에 비해 학벌이 더 강하게 작용한다 생각합니다.” -K군(Parsons Newschool For Design)


거듭 강조하지만, 스무살 내외의 나이가 되기까지의 시절에 대한 노력과 그에 따른 보상 역시 중요합니다. 하지만 대입 이후의 삶과 노력은 후 순위가되고, 교명이 하나의 족쇄가 되는 현실이라면 재고해야 하지 않을까요?


학교의 이름이 그 사람의 대부분을 담고, 나아가 그를 보여주는 그림이 되는 것. 어디까지가 맞는 걸까요.  


“(학벌이) 입사의 당락과 승진여부에 있어 나에게 유리한 면이 있을 수 있으나, 오히려 불리한 면으로 작용할 수 도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내가 하는 것은 로맨스, 남이하면 불륜’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을까싶다. 개인적으로는 학벌로 무언가 결정된다면 굉장히 찝찝할 것 같다.” - L군(조선대학교)



[다시금 태동하려는 듯한 사회]




프리패스인 양, 전에는 학교의 이름이 일종의 자격요건처럼 여겨져서 (좋은대학의 졸업장이 있다면) 실무적인 능력이 없어도 인정을 받을 수 있었지만, 요즘에는 학교의 이름과 실력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예전만큼의 힘은 발휘되지 못한다 - H군(성균관대학교)


고등학교땐 좋은 대학을 나와야 좋은 직업을 갖고 잘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성인이되고, 군대 등 여러 일을 거치며 사람들을 만나보니 좋은 대학을 나오지 않은 사람도 (좋은대학을 나온사람들보다) 더 돈도 잘 벌고 잘살아가는 사람이 많은 것을 보았고, 학벌이 중요한 것은 맞지만 필수조건은 아니라고 본다. - P군(한양대학교)


한편으로는 요즘 한국의 많은 20대들이 스스로 학벌주의를 타파하고 새로운 도전을 많이 하는 것 같아서 자랑스럽습니다. -N양(William & Mary College)


그들의 말을 통해 보건데, 현 한국 사회에서 학벌에 관해 가시적인 변화까지는 아니더라도, 조금씩의 변화가 오고 있는 듯합니다. 이는 상당히 긍정적인 모습이라고 말하고싶습니다.





[학벌, 우리의 사색]


지금까지 학벌에 관해 현재 각 학교에서 수학 중인 ‘그들'의 생각을 통해 학벌의 빛과 그림자를 돌아보았습니다. 

정리하자면, ‘학벌주의’라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문제시되는 분위기가 공공연하게 퍼져있는 것은 우리의 현실이지만, 학벌이란 개념 자체에는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이 공존합니다.

더불어 학벌의 형성은 우리의 문화와 사고 속에서 자연스레 형성된 것이며, 우리사회 사고의 프레임으로서 뿌리깊게 박혀있다는 점 또한 알 수 있었습니다.


자, 그렇다면 ‘학벌’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는 적정선으로 받아들여야 할까요. 어디까지가 보상이고, 어디부터 족쇄일까요. 

정답은 없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여러분의 사색이 시작되는 지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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