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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전기 발명가의 삶



제51회 '발명의 날'이 밝았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서는 이날을 가리켜 '국민에 대하여 발명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고 발명 의욕을 북돋우기 위하여 지정한 기념일'로 정의합니다. 우리 민족에게 자긍심을 안겨준 세계 최초의 강우계, 측우기가 발명된 5월 19일로 정해진 것도 이런 이유에서겠죠.


발명의 날을 맞아 인류에게 가장 위대한 발명이 무엇이었는지를 새삼 떠올리게 됩니다. 불, 바퀴, 글자 같은 고대의 발명품에서부터 각종 가전기구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발명이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이끌었습니다. 그 중 우리와 가장 친숙한 건 역시 '전기'일 텐데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만능에너지 전기는 우리와 접하는 거의 모든 사물에 깃들어 편리한 일상을 채워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에디슨)



기원전 600년경 그리스의 철학자 탈레스가 호박(보석의 일종)에 양털을 문질러 생긴 정전기를 '마찰전기'라 부른 이래, 전기는 다양한 형태로 우리 옆을 스쳐갔습니다. 그러다 토마스 에디슨(Thomas Edison)이 '에디슨 전구[각주:1]'를 발명하고 전기회사를 차려 전기를 공급하면서 마침내 전기는 가정에서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전기를 '발명'했다는 오해는 곤란합니다. 전기는 과거부터 오늘날까지 항상 존재해 온 에너지이고, 에디슨은 단지 이를 좀 더 편하게 활용할 수단을 발명했을 뿐이니까요. 더군다나 오늘날 대중에게 익숙한 '발명왕'이란 말 역시 그에겐 어울리지 않습니다. 분명 '에디슨 전구'는 끊임없는 실험의 산물이었지만, 다른 발명품 중에는 표절이나 특허 침해 등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게 많기 때문입니다. 


반면, 에디슨과 대조되는 삶을 살아온 이가 있습니다. 다른 이의 지적 재산을 가로채며 거대한 부를 축적한 에디슨과 달리 자신의 특허 권리를 포기했고, 이익보다 자신의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걸 중요시해 오직 연구에만 몰두했던 사람입니다. 게다가 에디슨의 위인전에선 에디슨을 방해하고 질투한 속 좁은 라이벌로 등장하기도 했죠.


평생을 고독하게 살아온 끝에 쓸쓸히 숨진 진짜 '발명왕',

그의 이름은 니콜라 테슬라(Nikola Tesla)입니다.



(니콜라 테슬라)



테슬라의 교류, 에디슨의 직류를 꺾다


전기를 전송하는 방식으로 직류만을 고집했던 에디슨에게 어느날 9살 연하의 청년이 추천서를 들고 찾아옵니다. 그의 정체는 최초의 교류 유도 모터를 제작한 젊은 시절의 테슬라였죠. 에디슨은 테슬라의 집중력과 능력을 인정해 그를 받아들이지만, 둘이 함께 한 기간은 채 고작 몇 달에 불과했습니다. 연구를 거듭할수록 직류보다 교류가 훨씬 우수하다고 주장하는 테슬라는 에디슨에게 눈엣가시나 다름없었으니까요.


에디슨 연구소를 나온 테슬라는 사업가 웨스팅하우스에게 교류 관련 장치의 특허권을 판매합니다. 자신의 연구소에 있을 땐 무시하면 그만이었지만, 교류 관련 장치가 시장에 나오는 건 참을 수 없었던 에디슨. 그때부터 그는 공개석상에서 교류에 대해 사사건건 트집을 잡기 시작합니다. 교류는 직류보다 사고 발생률이 높으며, 감전사할 위험도 크다는 게 에디슨의 주장이었는데요. 


당대에 이름이 높았던 에디슨과 신출내기 발명가 테슬라. 누가 봐도 에디슨의 압승으로 끝날 줄 알았던 이 승부는 뜻밖에도 테슬라의 일방적인 승리로 결착됩니다. 교류의 위험성을 강조하기 위해 에디슨이 만든 감전 장치나 전기의자 등이 신통한 효과를 내지 못한 데다, 잔인한 실험을 진행한 에디슨을 두고 비난의 여론이 빗발쳤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시카고 세계 박람회, 나이아가라 폭포에 세워진 세계 최초의 수력발전소 등의 요처에서 교류 방식이 채택되며 직류는 설 자리를 잃게 되었습니다.



(최초의 TV)



TV, 라디오, 핸드폰의 숨겨진 아버지


교류 방식의 대성공으로 입지를 굳건히 한 테슬라. 그는 막대한 수익으로 안락한 삶을 사는 대신 연구소를 차리고 자신만의 연구에 몰두합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X-ray를 발명한 뢴트겐보다 테슬라가 몇 주 앞서 X-ray 사진을 찍었으며, 최초로 라디오 기술 특허를 낸 마르코니보다 1년이나 앞서 라디오를 만든 것도 테슬라였다는 사실! 그의 활동 영역이 얼마나 넓은지 새삼 실감하게 되는 대목입니다.



(워든클리프 타워)



훗날 그의 이름을 가장 빛낸 건 다름아닌 '무선통신기술'입니다. 테슬라는 41세에 최초의 무선통신 특허를 신청하고, 이 기술을 활용해 무인 조종 배를 대중에게 선보입니다. 이어서 무선 통신 신호기를 만들어 다양한 실험을 진행하고, 훗날 '테슬라 타워'로 불리는 무선통신용 탑 '워든클리프 타워(Wardenclyffe Tower)를 세우려다 자금 문제로 실패하게 되죠. 그렇지만 그가 남긴 무선통신기술의 기초가 과학자들에게 계승되면서 오늘날 TV, 라디오, 핸드폰 등의 전자장비들이 만들어질 수 있었답니다.


무선통신기술을 자신의 뜻대로 상용화하는 데 실패하고 막대한 빚까지 짊어지면서 그는 몰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연구소와 특허기술을 팔아 빚을 갚는 데 써야 했고, 투자자들의 투자를 제대로 받지 못해 좋아하던 연구를 마음껏 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말년의 그는 호텔을 전전하다 쓸쓸하게 생을 마감해야 했는데요. 후손들이 그를 기리는 뜻에서 '테슬라'를 자기장의 단위로 정했다는 걸 알게 된다면, 지하에 있는 테슬라에게 큰 위안이 되지 않을까요? 



<출처: Wellcome Trust>



직류 VS 교류, 2차전의 승자는?


여기까지만 보면 교류가 승리하면서 직류는 완전히 자취를 감춘 것처럼 보이는데요. 테슬라에겐 다소 섭섭한 일이겠지만, 최근 직류를 이용한 전력 체계가 재등장하고 직류를 활용한 발명품이 잇따라 탄생하는 등 직류의 부활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특히 곳곳에서 소규모로 생산되는 신재생에너지를 더욱 효율적으로 배전하기 위해선 직류 기술이 효과적이란 게 핵심인데요. 그동안 직류를 기반으로 하는 신재생에너지(풍력 제외)들은 교류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전력 손실이 많이 발생했는데, 직류 배전이 상용화되면 이러한 변환 손실은 최대 20%까지 줄어들 전망입니다. 


한국전력은 현재 송전 및 배전 분야에서 직류 방식의 전력 공급 도입을 추진중입니다. 전남·광주 등 5개 지역에 교류 13,200V의 특고압을 750V의 저압 직류로 전환하는 실선로 최초 적용 사업을 진행하는 한편, 올 하반기부터 진도 서거차도에서 직류 독립섬 실증사업도 진행할 예정입니다. 이들 사업이 성공적으로 완료된다면 저압 직류 배전의 사업모델 및 직류 전원의 공급기술력을 끌어올릴 수 있게 되고, 직류 배전망 단독 운영 기술 및 직류 마이크로그리드의 설계능력까지 확보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만약 테슬라가 오늘날까지 살아있었다면 더욱 뛰어난 교류 방식을 만들겠다며 연구 의지를 불태우지 않았을까요? 아니, 그가 살아생전 더 나은 환경에서 꾸준히 연구를 진행하기만 했더라고 우리의 생활은 지금과 다른 모습이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진정한 전기의 혜택을 선사한 니콜라 테슬라, 그는 진정 위대한 전기 발명가였습니다.



  1. 에디슨이 최초의 전구를 발명한 건 아니지만, 그가 발명한 전구는 당시의 모든 전구 중 가장 성능이 탁월했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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