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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

 

사람들은 스캔들을 좋아하지만 스캔들의 주인공은 미워한다. 특히 조강지처를 버린 사람에 대해서 가혹하다. 바로 피아니스트 이자 세계적인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 이야기다. 바렌보임과 첼리스트 자클린 뒤 프레의 결혼은 슈만과 클라라 이후 가장 아름다운 음악가의 결합으로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바렌보임이 26, 뒤 프레 22세였던 1968년의 일이다. 명문 가문인 뒤프레의 가족은 유대인 지휘자와 결혼에 반대했다. 그러나 뒤프레는 결혼 후 유대교로 개종까지 했다. 결혼 생활 6년 만에 그녀는 다발성 경화증이란 희귀병에 걸렸다. 오랫동안 투병하다 198742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출처 : http://www.bmwguggenheimlab.org/)


아름다운 선율처럼 남편을 향한 내조에도 불구하고 그는 병든 아내에게 무관심했다. 뒤 프레의 임종이나 장례행사에도 그는 얼굴을 비치지 않았다. ‘기회주의자란 주홍글씨가 그를 따라다닌 이유다. 그러나 그에 대한 평가는 1990년 후반 이후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가 자신의 뿌리인 유대인이스라엘을 돌이켜보면서부터다. <평화의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은 스캔들에 가려져있던 그의 음악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자서전이다.

 

 

1942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난 그는 20세기 초 유대인 박해 때 남미로 이주한 유대인 집안이다. 바렌보임은 다섯 살 때부터 음악인 부모에게 피아노를 배웠다. 1952년 그의 가족은 이스라엘에 정착했다. 그리고 2년 뒤 그의 부모는 바렌보임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로 데려갔다. 그리고 베토벤 연주의 전설적인 지휘자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를 만났다. 푸르트벵글러는 11살 그에게 비범한 천재라는 호칭을 붙여줬다.

 

다니엘 바렌보임의 이력은 눈부시다. 1967년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를 맡아 데뷔했다. 이후 파리·시카고 관현악단의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를 지냈다. 현재 바렌보임은 베를린 국립오페라악단과 동독에서 넘어온 베를린 슈타츠 카펠레의 상임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출처 : http://www.theguardian.com/music/2013/oct/10/verdi-requiem-review)


그의 비결은 무엇일까. 책에서는 그는 모든 연주 행위의 근본은 서로에게 귀 기울이는 것에서 나온다귀 기울인다는 것은 드는 것보다 훨씬 능동적인 과정이며 당지 자신의 선율을 연주해가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으며, 동시에 동료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하기 때문에 무척 까다롭다고 말한다. 지휘에 대한 철학도 간명하다. “좋은 지휘자는 마디나 박자마다 지휘봉을 흔들지 않는다거꾸로 오케스트라와 청중이 아예 마디나 박자를 잊게끔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더 나아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분명히 전달하기 위해 박자를 구분한다고 역설한다.

 

재능과 철학이 더해지면 전설이 된다. 여기에 바렌보임은 시대적 화두인 평화를 고민했다. 그는 타인에 대한 무지는 언제나 어려움을 낳는다고 봤다. 팔레스타인계 미국인 사상가 에드워드 사이드와 함께 이스라엘과 이슬람국가 6개국 청년으로 구성된 웨스트이스턴 디반(West-Eastern Divan) 교향악단을 만든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양한 정체성이야 말로 인간의 존재를 더욱 흥미롭게 만들어준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그는 아르헨티나와 이스라엘의 시민권을 갖고 있다. 2008년 팔레스타인의 명예시민이 됐다.

 

스캔들에서 벗어난 그는 오늘도 지휘한다. 음악으로 평화를 설파한다. 올해 1월 파리테러 직후 기자회견에서 그는 유대인과 무슬림이 평화롭게 살고 있는 국가들에서 영감을 얻어야 한다면서 이런 일이 왜 일어나는지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생존을 위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고 그는 이상적이지만 않는다. “음악이 중동 문제를 해결해준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음악은 인생에서 가장 훌륭한 학교이면서, 동시에 삶에서 도피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 방법이다”. 그의 책 마지막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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