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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과 오해를 깨는 것에서부터 만화가 제대로 보인다 

사전에 기록된 만화에 대한 설명은 이렇다. "이야기 따위를 간결하고 익살스럽게 그린 그림. 대화를 삽입하여 나타낸다', '붓가는대로 아무렇게나 그린 그림' 그리고 또 하나 덧붙인 한 설명. '웃음거리가 되는 장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아마도 마지막 설명에서 만화에 대한 충분치 않은 이해와 오해와 편견이 도사리고 있는 듯하다. 


이를 테면 '어디서 만화 같은 말을 지껄이고 있는 거야?", "완전 만화 같은 일이다!" 라는 식의 표현들은 만화가 대개 황당한 사건을 이르거나 비논리적인 일을 지칭하거나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일컫는 말로 쓰인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맥락 때문에 만화는 부모들의 근심거리로 작용해 만화책을 좋아하는 학생들은 때때로 만화책을 본다는 사실을 숨겨야만 했다. 



그런데 정말 만화가 비논리적이며, 황당하며, 근심거리인가? 왜 만화는 근엄하고 도도한 예술과 멀찌감치 떨어뜨려야만 하는가? 아니, 다르게 질문해보자. 지금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예술 장르는 무엇일까? 당신의 일상을 즐겁게 만들고, 유익하게 성찰하게 만드는 장르가 무엇이냐고 말이다. 


<드라마 '미생' / 출처 : tvN>


얼마 전 종영한 <미생>은 드라마의 새 역사를 쓰는 한편, ‘노동자’ 젊은이들의 삶을 어떤 사회과학서보다도 더 첨예하게 보여준 바 있다. 모두가 알다시피 <미생>은 윤태호의 웹툰이 원작이다. 대중은 자신의 삶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이가 만화가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고, 제작자들은 만화 판권을 사느라 여념이 없고, 이는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지고 있다. 만화가들의 상상력이 없었다면, 우리의 일상은 훨씬 더 지루했을 것이다. 즉 만화가 이 세계를, 사람들의 마음을 차지하는 비중은 실로 상상 그 이상이다. 


스콧 맥클라우드의 <만화의 이해>, 놀라운 만화의 세계가 펼쳐진다. 

만화가 상상 그 이상임을 바로 ‘만화’로 비평한 한 사람이 있다. <만화의 이해>를 집필한 스콧 맥클라우드다. 그가 집필한 <만화의 이해>는 그간 우리가 만화에 대해 품고 있었던 모순적인 감정을 관통하면서, 충분히 설득 당할 만한 만화의 놀라운 지점을 알려준다. ‘만화에 대한 근본적이면서도, 급진적인 탐구서!’라는 책 설명처럼 <만화의 이해>는 만화에 관한 남다른 성찰을 보여준다.


<스콧 맥클라우드>


스콧 맥클라우드가 고민의 고민을 반복한 끝에 정의한 만화가 ‘의도된 순서로 병렬된 그림 및 기타 형상들’에 동의하는 사람이라면, 그가 자조적으로 정의한 다음의 설명에도 동의할 것이다. '밝고 원색적인 옷차림을 한 슈퍼 히어로들이 세계를 정복하려는 못된 악당들을 쳐부수는 이야기를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액션으로 묘사한 것', '손을 맞잡고 팔짝팔짝 뛰어다니며 춤추는 귀엽고 깜찍한 토끼', '조국의 젊은이들을 타락시키는 주범'. 앞서 사전에서 설명한 ‘웃음거리가 되는 장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는 듯하다. 


스콧 맥클라우드도 이러한 편견과 오해가 만화 주변부를 기웃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한때 자신도 그랬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그는 더더욱 만화가 ‘심오하다’는 것을 근본적으로 잘 밝혀내고 있다. 그는 ‘카툰화’를 통해 왜 만화가 사람의 얼굴을 추상화시키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그것은 곧 ‘카툰화’의 비밀인데, 그 이유는 ‘단순화를 통한 전달효과 확장’의 한 형식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보편성’이다. 카툰화의 정도가 강할수록 한 얼굴이 가지고 있는 보편성이 확장된다는 의미이다. 



사진 등과 같은 사실성이 강한 그림은 다른 사람으로 받아들이지만, 카툰화를 통해 모호해진 얼굴은 자기 자신으로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스콧 맥클라우드는 이를 두고 “카툰은 우리 정체성과 의식을 빨아들이는 진공상태”라며, “그 빈 껍데기를 우리가 채워 넣음으로써 다른 세계로 여행할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그저 단순화된 캐릭터라고 생각했던 카툰화에 담긴 놀라운 비밀을 하나 푼 것 같지 않은가. 물론 카툰화에 대한 그의 첨예한 분석과 비평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무려 116개에 달하는 캐릭터들을 분석한 도표는 비평가의 집요함을 보여주는 한편 그 비평의 정당성을 확보하게 만든다. 


컷과 컷 사이 '홈통'에 깃든 상상력, 만화만이 할 수 있다! 

칸으로 이루어진 만화에는 칸 사이에 공간이 있다. 만화 애호가들은 이를 ‘홈통(Gutter)’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스콧 맥클라우드는 바로 이것이 만화의 핵심에 자리잡고 있는 마술과 미스터리의 주역을 맡고 있다고 한다. 이 홈통이라는 빈 공간 안에서 독자들의 상상력이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스콧맥클라우드>

칸과 칸 사이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반드시 무엇이 있으리라는 경험적 추측! 한 번 떠올려보라. 칸과 칸 사이 빈 공간, 바로 그 홈통에서 잠깐 움찔하며 떠올렸던 수많은 상상들을! 스콧 맥클라우드는 그 사이를 ‘이동’이라고 하면서 순간 이동, 동작 간 이동, 소 재 간 이동, 장면 간 이동, 양상 간 이동, 무관계 이동 등으로 나누며, 만화가들은 독자들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이 펼치는 소리없는 춤 속으로 독자들을 잡아 끈다고 말한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칸과 칸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은 만화만이 해낼 수 있는 일종의 마술이라고 말이다. 그의 말대로 어떤 예술이 칸과 칸 사이의 ‘보이지 않는 것’을 통해 ‘보이는 것’을 창조해낸단 말인가. <만화의 이해>는 결코 쉬운 책이 아니다. ‘비평서’라는 타이틀답게 조금은 머릿속이 지끈해지는 인내심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시간이 아깝지 않은 놀라운 비평서이다. 만화가 ‘쉽다’는 편견은 조금은 미뤄두고, 스콧 맥클라우드의 비평을 따라가본다면 독자는 완벽한 이해는 하지 못하더라도, 넌지시 유추해볼 수 있다. 만화가 엄청나게 노련하고 훌륭한 매체라는 사실을. 무엇보다 만화가 괜히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은 게 아니라는 명확한 이유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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