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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는 현대 산업 사회의 혈액에도 비할 수 있다. 피가 돌지 않으면 곧 창백해지고 괴사하고 쓰러지게 되는 것처럼 전기의 생산과 공급이란 어느 사회 어느 나라에든 절체절명의 과제가 되는 것이다. 북한의 5.14 단전 조치는 당시 한반도 발전시설의 89%, 발전량의 96%가 북한지역에 편중돼 있었던 상황에서 감행한 '전기의 무기화'였다. 


남한은 전기 생산을 늘리기 위해 필사적이 됐다. 남한 최대 발전설비인 영월화력발전소 긴급 복구 공사가 시작됐고 그를 위한 강원도 일대 탄광에 채탄량을 늘리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당인리 화력발전소와 부산 화력발전소에 쓰일 일본산 유연탄의 수입도 허락됐다. 제한송전이 실시됐고 전차들의 사용도 줄어 심각한 교통난을 초래했다. 이른바 '블랙 아웃'의 현실화였다.


그 와중에도 대한민국 정부는 수립됐고 기다렸다는 듯 북한 역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독자적 정권의 성립을 선언했다. 이제 38선은 완연한 국경선이 됐고 쌍방 정부가 양성한 군대가 38선을 사이에 두고 격렬한 전투를 치르는 한편 남한 내의 좌익들은 반란을 일으키거나 산간 지대에 잠입하여 후방을 교란하는 등 한반도의 정세는 일촉즉발로 나아갔다. 김구, 김규식 등 인사들의 마지막 노력도 헛되이 분단은 철옹성처럼 굳어졌고 '북진통일'과 '국토완정'의 구호 하에 서로를 노려보는 눈초리는 살기로 차올라 갔다.


<출처 : http://38north.org/>

 

전쟁 준비를 마친 북한이 1950년 6월 25일 38선 전역에서 전면 남침을 감행하면서 민족의 비극인 6.25가 막이 올랐다. 국지전이 아닌 전면전. 수천만의 한국인들은 남과 북 양쪽의 정부 중 하나의 지휘 하에 다른 쪽 한국인들과는 불구대천의 원수가 됐다. 전면전은 상대방의 모든 전투적 역량과 인적 물적 자원의 타격과 소멸을 목적으로 한다. 그 대상 가운데 빠질 수 없는 것이 현대 사회의 생명줄 전기였다. 


남한의 산간지대에서 활동하던 좌익 빨치산들에게 가냘프게나마 가동되던 남한 지역의 발전소는 최고의 공격 대상이었다. 중공군 개입으로 인한 1.4 후퇴 이후 남한의 거의 유일한 발전소는 전북 정읍군 칠보면 시산리의 칠보발전소였다. 38선 이남 주요 발전소 중의 하나였던 영월 화력 발전소는 중공군의 손에 넘어간 이상 이 수력발전소는 남한 최후의 발전소였다. 이 칠보발전소를 빨치산들은 놓치지 않았고 칠보발전소는 빨치산들에게 포위된다. 발전도 발전이지만 댐을 만들면서 조성된 옥정호수 등 관개시설은 호남 평야에 물을 대기 위한 필수 시설이었기에 이래저래 남한이 입을 타격은 컸다.


이 칠보발전소 사수전에 동원된 것이 차일혁 총경의 전투경찰 18대대였다. 불과 100여 명의 병력에 불과했으나 그들은 발전소에 고립돼 있던 아군과 협력하여 빨치산들의 포위를 물리치고자 한다. 발전소에 아군의 도착과 작전 지시를 위해 연락병들이 수시로 파견됐으나 가는 족족 빨치산들의 총탄에 쓰러지고 말았다. 더 이상 누구를 뽑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4명의 지원자가 동시에 나선다. 학교 교사가 꿈이었던 이한섭 경사였다. "제 고향인데 제가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어서 3명의 자원자가 더 나서 4명의 결사대가 빨치산이 쏘아대는 총알의 비를 뚫고 포복하기 시작했다. 


<칠보 발전소 / 출처 : blog.xuite.net>


아군도 필사적인 지원 사격에 나섰고 격렬한 총격전 끝에 결사대는 마침내 발전소 지하에 고립돼 있던 아군 진영에 도착하는 데에 성공했다. 발전소 병력과 응원 경찰 병력은 동시에 자리를 박차고 빨치산들의 포위를 향해 돌격했고 칠보발전소의 위기는 끝날 수 있었다. 1952년에는 제주도 서귀포 발전소도 공비들의 습격을 받았다. 여러 차례에 걸친 공격이 격퇴되기는 했으나 전쟁 내내 남한의 발전 시설은 최우선적인 적의 공격 대상이 된다. 


휴전 회담이 시작됐으나 진전은 없었다. 금방 끝날 것 같던 전쟁은 2년을 끌었고 그 와중에 전선의 고지들에서는 수없이 많은 청년들이 죽어갔다. 그러던 중 1952년 5월, 인민군 포로수용소가 있던 거제도에서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턱수염에 불을 지르는 사건이 발생했다. 인민군 포로들이 반란을 일으켜 수용소장 돗드 준장을 납치해 버린 것이다. 그는 돗드 준장에게 포로 학대 등의 범죄가 있었다는 자백서(?)에 서명을 강요했고 협박에 못이긴 돗드 준장은 그만 거기에 서명하고 말았다.


<거제포로수용소 모형 / 출처 : www.nuku.de>


미 육군 준장이 자백한 '포로 학대'는 공산권에는 최상의 선전 재료였고 미국으로서는 더 이상 당할 수 없는 굴욕이었다. 포로들로부터 풀려난 돗드 준장은 별을 떼이고 대령으로 강등된 뒤 강제전역당한다. 이런 창피를 당한 뒤 미국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 적에게 최대한의 타격을 가하고 전쟁을 끝낼 수 있는 '결정적 수단'을 강구하게 된다. 그 방안 중의 하나로 선택된 것이 바로 '전기'였다. 북한이 자랑하는 수풍 발전소를 비롯 각처의 발전소를 폭격으로 없애버리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만약 수풍댐이 폭파된다면 수풍호의 물은 물폭탄이 되어 북한의 신의주를 덮치고 중국의 단동까지도 물바다를 만들어 버릴 수 있다. 수풍댐 이외에도 북한과 중국의 국경지대는 엄격한 폭격 제한 구역이었다. 혹시 있을 수 있는 오폭으로 중국 영토에까지 전쟁이 확대되는 것을 막고자 하는 뜻에서였다. 하지만 일시 결렬된 휴전 회담과 인민군 포로수용소에서의 굴욕은 이 금기를 산산이 부수어 놓았다.


<거제포로수용소 터 / 출처 : www.nuku.de>


새로이 부임한 UN군 사령관 마크 클라크는 대통령 트루먼에게 중대한 요청을 한다. "수풍발전소 등 북한의 발전 시설을 공격하겠습니다." 1952년 6월 19일 트루먼 대통령은 이를 허락한다. 그로부터 나흘 뒤 6월 23일 북한 해상으로 4척의 항공모함이 출동하고 무려 500여 대의 미 공군 전투, 폭격기들이 날아오른다. 수풍발전소 대공습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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