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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6개월 혹은 1년 동안 매일 1시간씩 아니면 당신이 원하는 만큼 수백 시간 혹은 수십 시간 연습하다면 당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온전히 그려낼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작품에 수준 높은 평가를 내릴 수 있는 능력 또한 갖출 수 있다. 나는 이 점을 보장하는 바이다. 잠시라도 시간이 허락된다면, 지금 당장 시작하자." 

-<존 러스킨의 드로잉> 중 


드로잉, 예술가들을 가로질러 '나'에게 오다.

나의 책 <오늘의 일러스트>는 한국의 미술가들을 인터뷰한 것이다. 45명의 한국의 미술가들을 인터뷰하면서 발견한 의외의 사실은 이들 중 그림을 뒤늦게 시작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여행의 풍경을 감각적인 드로잉으로 기록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오기사'는 원래 직업이 건축가다. 본명보다 그를 더 잘 수식하는 오기사의 '기사'는 바로 건축 용어에서 따온 것이다. 현재 왕성한 활동을 하는 일러스트레이터 밥장 역시 대기업을 다니던 잘 나가는 회사원이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우연히 시작한 드로잉이 그를 한국의 대표하는 드로잉 아티스트로 만들었다. 

<오기사 '날씨를 이해해주는 마음' / 출처 : 네이버 캐스트>


<차이니즈 봉봉 클럽>으로 열혈 독자층을 거느리고 있는 만화가 조경규 역시 놀라운 이야기를 해주었다. 누군가 부탁한 만화를 그리기 전까지는 그래픽 아티스트였음을 말이다. 그림에 잼병인 내가 미술가들에게 "어떻게 이렇게 놀라운 그림을 그릴 수 있냐"라고 경탄을 표시할 때마다, 번번이 미술가들은 "당신도 할 수 있다"라고 다독여주곤 했는데 솔직히 그 말을 믿지는 않았다. 


여전히 내 깊은 마음속에는 그림은 '타고난 천재'만의 영역이라는 굳건한 믿음이 터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작가이자 화가였으며, 사회 개혁 사상가이도 했던 존 러스킨의 뜻밖의 책, <존 러스킨의 드로잉>이라는 책을 접하게 됐다. 개혁 사상가답게 그는 '드로잉'을 일컬어 사물에 대한 관찰과 사유의 밀도를 높이는 유용한 수단으로 보았다. 이런 이유로 일반인들도 적극적으로 배울 것을 권장하고, 장인 학교에 소묘 강좌를 개설하고 수년 동안 강의를 했는데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이것이다.


'드로잉, 하면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드로잉을 시작해야 할까? 아니, 왜 사람들은 드로잉을 하고 싶은 걸까? 



왜 드로잉을 하고 싶을까? 

일러스트레이터, 페인터, 만화가 등 미술가들을 만나면서 알게 된 또 하나의 사실은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는 것이다. '웹툰'을 그리고자 하는 사람들이 한 해에만 10만 명이라고 한다. 출판 불황 시대에도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이 바로 '그리기 책'이다. 놀라울 정도로 그림과 관련된 드로잉 북, 스케치북, 색칠 책이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또한 '그리기'의 욕망은 절실하다. 학교 선생님인데도 만화 그리는 일을 포기하지 않고 따로 시간을 내어 그림을 그리는 만화가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에게 "두 가지 일을 하기란 참 힘든 것인데, 왜 그리냐"라며 우문을 던졌는데 이유는 흔들림없이 단호했다.

"제 직업은 만화가니까요."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림을 그리고 싶었으나 어쩌면 그 꿈을 놓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인간의 기본 욕구 중 하나인 '표현 욕구'가 우리 삶에서 과연 제대로 표출되고 있을까. 드로잉은 억압된 욕구의 해방구일 수도 있고, 존 러스킨의 조언처럼 관찰력과 사유 능력을 길러주는 훌륭한 도구일 수도 있고, 세상에서 몇 안 되는, 손끝으로 행하는 인간의 미적인 행위일 수도 있다. 이 중 무엇이 되었든, 자본과 매개되는 행위들만 의미있다고 평가되는 시대에, 드로잉이라는 미감의 영역으로 '자정 중'인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새삼 위안이 된다.


드로잉,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드로잉을 배우기 위해 학원을 가야 한다면 주저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 초보를 위한 친절하고 훌륭한 책들이 많이 출간되어 있다. 드로잉 관련 책을 서점에서 훑어보고, 그 중에서 자신의 취향과 수준에 가장 적합한 책을 찾아내, 일단 그 책 한권을 마스터해보는 것이 좋다.


<지금 시작하는 드로잉 / 출처 : 네이버 책>


오은정이 엮은 <지금 시작하는 드로잉>은 굉장히 꼼꼼하고, 친절한 책이다. 어렵지는 않지만 어수룩하지도 않다. 상당한 내공을 쌓게 만드는 책이다. '그리지 않고도 그림 실력은 향상될 수 있다', '직선 긋는 방법', '진짜 관찰은 구조를 파악하는 것', '복잡한 물체는 패턴을 찾아라', 내가 어떤 성향인지를 파악하자', '이 책이 안내하는 수칙을 믿고 따라가본다면, 드로잉이라는 세계에 발을 내딛는 데 자신감을 심어줄 것이다. 


정진호가 자신의 글과 그림으로 엮은 <철들고 그림 그리다>는 그림을 통해 자유를 얻고자 하는 사람들의 길벗이 돼줄 것이다. 그 역시 마흔이 된 어느 날 문득 그림을 그리고 싶어 시작했는데, '우리는 모두 예술가로 태어난다'로 시작되는 글은 기운을 복돋아주기에 충분하다. 그가 제시하는 '일상 예술가'의 가장 중요한 명제는 '행복을 위해 그림을 그린다'이다. 그가 안내하는 일상 예술가의 길을 차분하게 따라가다보면 일상도 보이고, 감춰져있던 예술가의 기질도 발견하게 될 것이고, 무엇보다 행복과 마주하게 될 듯하다. 


<플레잉 위드 스케치 / 출처 : 네이버 책>


드로잉의 영역을 보다 넓혀 좀 더 다채롭게 접근할 수 있는 <플레잉 위드 스케치>는 마치 추억의 만들기 수업에 우리를 초대하는 듯한 책이다. 물론 초보에게는 어렵겠지만, 다른 드로잉 책을 통해 기초를 연마했다면, 과감하게 이러한 책에 도전해도 좋을 것 같다. 특히 아트북에 관심있는 사람이었다면 꼭 기억해둘 것. 대부분의 미술가들이 철학자였듯 드로잉 수업과 함께 스케치에 관한 글을 접하는 것도 그림에 대한 지평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될 듯하다. 


소설가이자 문화비평가인 존 버거가 스피노자의 시선으로 쓰고 그린 <벤투의 스케치북>을 리스트에 같이 올려보자. 보는 것이 그리는 것이며, 그리는 것이 곧 보는 것임을, 그리고 이러한 순환 행위를 통해 나의 삶에 자유와 여유가 찾아옴을 '덤'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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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틀비 2014.12.11 15:42
    저는 예술 능력 중에 그림이 최고의 재능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한 번 시작해볼까요?ㅠㅠ
  • 나필경사 2014.12.11 15:42
    인간의 가장 오래된 표현 욕구 중 하나인것같네요
  • 에스더한 2014.12.11 15:43
    우리나라도 유럽처럼 거리의 화가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어요
  • 김현주 2014.12.11 15:44
    일러스트가 주는 느낌이 정말 독특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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