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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패배'라는 시소에서 우리의 직관은 언제나 전자에 추를 얹는다. '종(種)'으로서 인간은 진화라는 생물학적 투쟁과 역사의 무수한 난관을 이겨낸 승자지만 개개인으로서의 인간은 늘 좌절의 연속에서 일어나지 못했고, 때로는 피흘렸으며, 끝내 사라져갔다. "역사는 승자만을 기억한다"는 낡고 해진 표현이 우리에게 난폭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받아들이기 어려울지언정 그것이 너무나도 명확한 '사실'의 명제이기 때문이다.

 

현대는 '승리'와 '패배'라는 개념이 무의미할만큼 '패배자'들이 차고 넘친다. 3개의 메달이 걸린 올림픽 육상 경기에는 100년 전보다 50배나 많은 선수들이 참가하며, 각 나라의 인구는 19세기보다 평균 5배가 늘었고, 경영 능력이 있는 고학력층 역시 과거에 비해 100배 이상 늘어났지만 어느 기업에서도 "우리 회사는 CEO가 100명이라네"라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출처 : www.itv.com>

 

이쯤되면 여러분은 이런 반문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정된 패배를 기다리며 그저 연명이나 하고 있다는 말인가?"

아쉽게도 내게는 이런 물음에 답할 수 있을만한 철학적 사유가 없다. 다만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일상에서 우리가 겪는 패배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혹독하고도 비참한 패배자들이 역사 속에서 수 없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패배에 등급을 매기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아름다운 패배'란 분명 존재하는 듯하다. 인간 전락을 다룬 패배의 드라마를 보고 눈물을 쏟더라도 그 눈물이 통속적인 '신파극'의 눈물인지, 아름다운 '비극'의 눈물인지 우리는 금방 분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패자의 비극에서 나오는 아름다움과 눈물은 어디서 기원하는 것일까? 지금부터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역사상 가장 처연했던 패배자들의 이야기를 살펴보려한다. 

 

한 평생 그늘에 살다 - 하인리히 만(Heinrich Mann)

독일의 소설가 하인리히 만(Heinrich Mann)은 세계 문학계에서 가장 혹독한 패배를 겪은 인물이다. 1890년 19세였던 하인리히는 단편소설집 『무절제(Haltlos)』를 발표했지만 평단의 무관심과 가업을 잇게 하려는 아버지의 극심한 반대로 큰 절망을 겪는다.

 

4년 뒤인 1894년, 하인리히의 동생이 1894년 첫 단편소설『전란(Gefallen)』을 발표하면서 문단의 관심을 받기 시작하는데, 이 동생이 바로 20세기 가장 위대한 독일의 소설가 토마스 만(Thomas Mann)이다.

 

<하인리히 만(좌)과 동생 토마스 만(우) / 출처 : whenintime.com>


사실 토마스의『전란(Gefallen)』은 내용적 측면에서 하인리히의『무절제(Haltlos)』와 유사한 면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표절이라는 개념자체가 익숙하지 않았던 당시 토마스는 이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했다. 1897년, 토마스 만은『키 작은 프리데만 씨』를 발표하며 큰 성공을 거두었고 연이어『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일약 세계 문단의 총아가 됐다.


물론 같은 시기 하인리히는 큰 열등감에 사로잡혔다. 동생에게 문학적 모티브를 제공한 것이 자명했지만 그보다 딱 한 뼘만큼 모자른 재능 탓에 동생의 성공을 먼발치에서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아무도 조장하지 않았던 '형제의 승부' 속에서 완전한 패배자였던 것이다.


<토마스 만의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 출처 : modernlib.com>

 

하인리히의 처절한 패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문단의 슈퍼스타가 된 동생에 맞서기 위해 밤낮으로 글을 썼지만 1902년~1903년 발표한『여신들』과『사랑 사냥』이 평론가들에게 함량 미달의 작품으로 낙인 찍혔다. 심지어 이 낙인에 다름아닌 동생 토마스도 한 몫 거들었는데 형이 집필한『사랑 사냥』에 대한 평가를 부탁받은 냉혈한 동생은 아래처럼 지독한 문장으로 하인리히를 짓밟는다.

 

"『사랑 사냥』을 읽는 것은 고통이었다. 뒤틀린 농담, 인간성과 진리에 대한 지독한 모독, 품위 없는 불평과 어설픈 재주넘기가 판을 치는 이 소설은 왜곡과 극단적인 과장, 그리고 무절제함의 전형이다"

 

하인리히는 작가적 살인이라 불려도 좋을만한 동생의 독한 평가를 듣고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동화 속이라면 포기하지 않고 집필에 전념한 하인리히가 동생 이상의 성공을 이루겠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그가 평생 글을 쓰며 성취가 있었던 작품은 『가난한 사람들』과『운라트 교수』2편 뿐이었다. 작은 성취라 할 수는 없지만 동생인 토마스는 이 시기에 노벨문학상을 거머쥐며 형과의 승부에서 마침표를 찍었다.


<하인리히 동상(좌)과 그의 작품『운라트 교수』(우) 출처 : www.vebidoo.de>


하인리히 역시 프로이센 예술아카데미 회장직을 맡는 등 문단을 떠나지 않고 작품을 써내려갔다. 75번째 생일에는 온순해진 동생으로부터『나의 형에 관한 보고』라는, 명예 회복을 위한 책까지 선물 받지만 이미 세계는 하인리히의 이름에 관심이 없었다. 하인리히는 죽음을 앞둔 몇 주동안 세상에서 가장 평온한 얼굴로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책을 낭독했다고 한다. 평생 결핍된 재능을 원망했을 하인리히는 소수이지만 자신만의 독자들에 둘러싸여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승리 속에 감춰진 천재 과학자 - 앨런 튜링(Alan Mathison Turing)

1954년 영국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앨런 튜링(Alan Mathison Turing)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사건 기록을 보면 튜링이 실수로 청산가리를 먹고 죽었다는 꽤나 간편한 내용이 적혀있다. 그러나 그의 죽음에 관련된 진실은 32년이 지난 1986년에서야 브리태니커 사전에 의해 밝혀졌다.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의 암호기인 에니그마(Enigma)는 극도로 난해한 암호체계로 유명했는데 이 때문에 영국은 수학자인 튜링을 '정부암호학교'에 파견하여 수학팀장으로 근무시켰다. 어려서부터 수학에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했던 튜링은 이 곳에서 능력을 본격적으로 발휘하기 시작한다.


 <앨런 튜링과 그의 컴퓨터 연구소 / 출처 : www.bbc.co.uk>


1935년 영국 잠수대원들이 침몰한 독일군의 잠수함에서 에그니마 암호책을 입수한 뒤 튜링의 연구는 탄력을 받았다. 그의 암호해독으로 영국 함대사령부는 독일 잠수함들의 위치와 공격 계획을 손바닥 보듯이 꿰찰 수 있었고 결국 승리는 연합군에게 돌아간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자 영국 정부는 가장 은밀했던 이 암호학교 작전을 고스란히 묻으려 애썼다. 더불어 튜링을 암호학교에서 내보내며 그 곳에서의 일을 발설하지 않겠다는 서약까지 받아냈는데 이는 2차대전 승리에서 자신이 세운 크나 큰 공을 모두 감추라는 뜻과 진배없었다.

 

<2차 대전 당시의 영국함대(좌)와 에니그마(우) / 출처 : www.americaslibrary.gov>


턱 없이 모자라지만 얼마간의 보상을 받은 튜링은 제대 후 자신의 공을 숨긴 채 컴퓨터 개발 프로젝트에 전념하며 학자로 돌아갔다. 그러나 이 때부터 튜링과 국가 권력과의 승부가 시작됐다. 


동성애자였던 튜링은 19세의 한 청년과 동거 중이었는데 불행히도 이 청년은 범죄 집단과 어울리는 탕아였다. '이성간의 사랑'만이 상식이었고 합법이었던 당시, 튜링과 동거남의 보금자리가 도둑에 털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뛰어난 머리에 비해 순진하기 짝이 없는 가슴을 갖고 있던 튜링은 조사 과정에서 자신과 동거남의 사생활을 경찰에게 자세히도 설명했다고 한다.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 / 출처 : 네이버영화>

 

이후 사건의 수사방향은 기묘하게 흘러간다. 도둑을 잡아야 할 경찰이 튜링의 동성애적 성향에 대한 조사를 필요 이상으로 캐기 시작했고 결국 피해자인 튜링은 오히려 '부자연스러운 성문란 혐의'라는 죄목으로 고소를 당한다.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영국 정부는 그를 컴퓨터 연구소에서 해임시켰고, 동성애가 질병이라 여겼던 당시의 미성숙한 통념으로 1년 동안 강제 여성호르몬 투여를 받게 된다.

 

이 급작스러운 천재의 추락이 과연 모두 우연일까? 공식적인 인정은 없었지만 각 국가들이 2차 대전 당시 비밀 작전에 투입된 인원들에게 비밀리에 감시를 붙이거나 죄를 만들어 수감했다는 사실은 여러 증언에서 확인되었다. 당시 영국 사회에서 동성애가 얼마나 큰 죄였는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튜링 역시 '전쟁 중 비밀작전에 가담한 피해자'라는 합리적인 의심을 충분히 가질 수 있다.

 

<튜링의 동상(좌)과 그의 어머니가 쓴 튜링전기(우) 출처 : mathcomp.leeds.ac.uk>


1년 동안의 여성 호르몬 주사를 맞은 후 튜링의 삶은 얼마가지 못했다. 생전 월트디즈니의 백설공주 이야기를 좋아했다던 튜링은 사과에 독약을 주사한 뒤 동화 속 공주님과 같은 방법으로 세상을 등졌다. 어떤 매체에도 추모사 한 구절 실리지 않은 외로운 전쟁 영웅의 죽음이었다.


1974년까지 그의 일생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극히 일부였다고 하니, 국가권력과의 승부 앞에서는 제아무리 뛰어난 수학자의 운명도 그저 바람 앞의 등불이었다.



우리는 주위에 승리를 거둔 누군가에게 '천재'라는 게으른 수식어를 쓰고 싶어한다. 그러나 능력의 우열과는 별개로 승리와 패배는 급작스럽게, 그리고 거대하게 누구의 삶에나 틈입한다. 그런 의미에서 패배에 대처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어쩌면 '순응'일지 모른다. 등반가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혹독한 산에게 몸을 맡기는 것이라고 하지 않던가. 

 

지난 날 수도 없는 사람들이 역사에 이름 한 줄 올리지 못하고 사라졌으며 그 시절에 비해 평범한 우리가 승자가 될 확률은 더욱 낮아졌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패배'라는 단어에 난색을 표하지만, 패배자들이 이룩한 역사가 이처럼 처연하고도 아름다운 비극이었음을 부인하기란 쉽지 않다.


단 한명의 승리자를 제외한 우리의 삶은 세상으로부터 '패배'라는 이름으로 불릴지도 모른다. 허나 그 패배의 인생 드라마가 반드시 통속적인 '신파극'일 필요는 없다. 한 없이 남아있는 인생의 경랑을 온 몸으로 부딪히며 우리의 드라마를 아름다운 '비극'으로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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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호 2014.11.19 17:35
    이 글을 보니 패배자에 대해서도 재조명을 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 천재 2014.11.19 17:36
    헤헷
  • 볼프강 2014.11.19 19:05
    사실 역사는 승자보다 패자들이 만드는거죠
  • BlogIcon hee 2014.11.19 19:12
    잘 읽고 가요!! :) 패배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되어서 무척 좋았어요 ㅎㅎ
  • 오민준 2014.11.20 08:56
    다큐 한편본것같네요 ㅎㅎㅎㅎㅎ굿굿굿
  • 김연지 2014.11.20 10:39
    전업작가님이신가봐요 잘 읽었습니다
  • 알리바바 2014.11.20 11:02
    뭔가 슬프면서도굳세어지는 느낌이네요
  • 모나코 2014.11.20 14:00
    오오~~~~~~논픽션 다이어리 보는것같은데요? 서프라이즈에서 나오는 목소리가 음성지원된다능
  • 이수진 2014.11.20 15:05
    재밌어요 한전블로그에 읽을거리 많아서 좋네요
  • BlogIcon 2014.11.20 15:59
    좋은 글이네요.. 잘 읽고 갑니다^^
  • 시간여행자 2014.11.20 16:33
    글을 참잘쓰시네요 지난번 영화추천글도 재밌게봤는데 다루시는 스팩트럼도 넓고,,,
  • 박찬현 2014.11.20 16:57
    네이버에 애플검색하면 튜링이라고 연관 뜨던데 왜그러나했더니 사과를 먹고 숨을 거두셨군요. 좋은글 잘읽고갑니다. 이런거 또 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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