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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립아트코리아


길고도 긴 전기발전의 역사
인간의 동력원을 찾기 위한 여정은 길고도 험했습니다. 호모 에렉투스는 기원전 35만 년 전부터 불을 발견하고 사용했는데요. 이러한 불의 발견은 동력 발전 역사의 첫 획을 그은 사건이었습니다. 이후 기원전 600년, 고대 그리스의 탈레스가 마찰전기 현상을 발견하면서 인간은 전기발전의 단초를 확인합니다. 현재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동력원인 전기를 자연에서 발견한 순간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본격적인 전기발전은 꽤나 시간이 지난 후에야 이뤄지는데요. 1800년, 볼타가 화학 전지의 가장 기초가 되는 전지를 발명하고, 1834년 패러데이가 “전자기 유도 원리”를 통해 발전기를 만드는 데에 성공합니다. 1837년에는 모스가 전신기를 만들고, 1876년에는 벨이 최초의 전화기를 발명합니다. 이런 역사를 거쳐 드디어 1879년, 토머스 에디슨이 백열전구를 만들어 세상을 밝히게 됩니다. 백열전구를 발명한 에디슨은 1881년에 상업발전소를 건립하는데, 이때 세워진 뉴욕중앙발전소가 바로 최초의 상업발전소라고 합니다.

한국의 전기발전 역사도 꼼꼼하게 알아보자!
여기까지의 이야기가 생각보다 익숙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최초의 철학자라고 불리는 탈레스, ‘패러데이 법칙’으로 유명한 패러데이, 벨과 에디슨 이전 전화기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안했다는 안토니오 무치·엘리샤 그레이 등 서양의 전기발전 역사는 다양한 방식으로 접할 수 있기 때문인데요. 하지만 정작 우리나라의 전기발전 역사는 접하기 쉽지 않습니다. 이번 기사를 통해 한국의 전기발전 역사에 대해 샅샅이 파헤쳐보려고 합니다.

1. 1887~1899년
(1) 최초의 전기점등
최초의 전기는 1887년 3월 6일 경복궁에서 점등되었습니다. 당시로써는 에디슨의 전기발명 이후 고작 8년 만에 전기를 점등한 것이었기 때문에 획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발전설비는 연못에서 물을 얻어 발전기를 돌리기 위해 향원정 연못가에 설치되었는데요. 이 설비는 놀랍게도 동양에서 가장 성능이 뛰어난 것으로, 백열등 750개를 켤 수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발전기의 조립부터 전등 가설까지는 모두 미국 에디슨 전기회사의 전기기사가 수행했습니다.

 

경복궁 전기 점등식 시등화 ⓒ한국전력 홈페이지


(2) 한성전기회사 설립
한국전력의 전신인 한성전기회사는 1898년, 고종황제가 이근배, 김두승의 이름으로 설립했습니다. 즉, 한성전기회사는 일본의 도움을 받지 않은 우리의 민족기업인 것입니다. 한성전기회사는 서울 시내의 전등, 전차, 전화사업을 운영했는데요. 이때 운영한 사업은 전부 중앙의 발전소에서 배전설비를 이용해 전기를 공급했다는 점에서 본격적인 전력사업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성전기 회사 사옥 ⓒ한국전력 홈페이지 / 개통 시 전차의 모습 ⓒ한국전력


(3) 최초의 전차 개통
근대적 대중교통의 대표격인 전차가 개통되기 이전, 서울에 살던 백성들의 이동수단은 인력거와 자전거였습니다. 동력원이 인간의 힘이었던 전근대의 모습이죠. 하지만 1899년 5월 4일, 전기를 이용한 기차인 전차가 동대문과 홍화문 구간에서 시험 운행이 됩니다. 이로써 조선에도 드디어 동력원을 전기로 사용하여 운행되는 교통수단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같은 달 20일부터 백성들도 전차를 이용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요. 이때는 마땅한 정류장이 없었기 때문에, 승차를 원하는 사람이 신호를 보내면 전차가 정지해 승객을 태웠다고 합니다. 승객으로서는 현재보다 더 편리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2. 1900~1948년
(1) 최초의 민간전기 점등
최초의 전기 점등이 경복궁 안에서 이루어진 것을 기억하시나요? 당시에 전등 가설은 큰 비용이 들어가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궁궐 안에서만 전깃불을 킬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한성전기회사가 전등사업을 본격화하고 동대문 발전소에 200kW의 발전설비를 설치해 전차와 전등에 전력을 공급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1900년, 드디어 길거리에 전차의 야간운행을 위한 조명용 전등이 등장하는데요. 이는 가히 ‘밤거리는 어둡다-’라는 상식을 완전히 깬 획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2) 대규모 수력발전
1900년대를 지나면서 전력 소비가 본격화됩니다. 이에 따라 한때는 전기회사가 60개나 되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1920년대가 되자 전기회사의 난립과 사업 확장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고, 결국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전기요금 인하와 전기사업 공영화 운동이 일어납니다. 1930년대가 되자 대규모 수력발전이 일어나는데요. 1903년에 세워 1938년 폐쇄 전까지 이름을 떨친 용산발전소 외에도 북부 지역에 집중해 수력발전소 건설이 시행됩니다. 1929년부터 1945년까지 부전강, 장진강, 허천강, 압록강 수풍 등에 21개 발전소가 세워지고, 약 160만kW의 수력발전설비가 건설됩니다. 특히 동양 최대 규모인 수풍발전소와 동양 최초의 초고압 송전시설은 세계 전력사업계를 놀라게 했다고 합니다.

 

(3) 5.14 단전
 5.14 단전은 광복 이후 38선으로 나뉜 당시의 남북 상황이 문제였습니다. 해방 당시 우리나라의 전력은 거의 수력에 의존한 실정이었고, 대부분 발전시설이 북한 지역에 치우쳐 있었습니다. 당시 남한 지역의 발전설비는 소규모에 노후화되어 있었는데요. 1948년 5월 14일, 북한이 정치적인 이유를 내세워 남쪽에 대한 송전을 중단합니다. 갑작스러운 전력난으로 인해 남한 지역은 큰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3. 1961~1978년
(1) 3사 통합 한전 창립
6.25 전쟁을 거치며 전력생산시설이 파괴되다 보니 전력사업은 만성 적자에 마주하게 됩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1961년, 우리나라 대표 전기회사였던 조선전업, 경성전기, 남선전기 등의 회사가 통합하여 한국전력주식회사를 세우게 되는데요. 한국전력의 창립으로 인해 그동안 발생했던 전력손실, 낮은 노동생산성, 수지 불균형을 극복하게 되었고, 전력사업이 정상화되었습니다. 이후 전력생산 기술이 발전하고 전력생산이 크게 늘었으며 이는 경제성장에 든든한 뒷받침이 되어주었습니다.
[그림5] ⓒ한국전력 홈페이지

(2) 원자력 시대 개막
1978년, 원자력 발전이 등장합니다. 원자력 발전은 효율적으로 대량의 전력을 생산하면서도 환경을 생각하는 기술로서 고안되었는데요. 1978년 4월 10일 가압경수로형 고리 원자력 1호기가 준공됨으로써, 세계 21번째로 원자력 1호기를 건설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전력은 원자력 발전에 대한 고유기술 개발에 몰두해 한국표준형 원전을 개발하게 되었고 세계 최첨단의 원전을 완성합니다.

4. 1997~2009년
1990~2000년대를 지나며, 한국전력은 세계적인 기업으로서 발돋움합니다. 한국전력은 1997년, 세계 전력 부분의 노벨상이라고 일컬어지는 ‘에디슨 대상’을 수상하는 저력을 보였습니다. 2005년에는 기존에 사용하던 110V의 가정용 전압을 220V로 바꾸고 통합하여 승압 작업을 완료했습니다. 2009년 12월 27일에는 UAE 원전 건설사업을 수주, 우리나라 원자력 역사 50년 만에 최초로 해외 수출에 성공하죠. 세계화 시대에 전력사업을 주도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한 것입니다.

 

220V 승압사업 / UAE 원전 안전 품질 결의대회 ⓒ한국전력

 

5. 현재의 전기 발전
2014년, 한국전력은 전남 나주의 신사옥으로 본사를 이전했습니다. 한전은 이를 통해 ‘에너지 밸리’를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를 본격화하여 나주시대의 개막을 알렸습니다. 경영에 대해서도 ‘전력공급사슬의 친환경화, 저탄소 녹색기술개발, 에너지 효율 향상으로 환경가치 창출’로 새로이 목표를 잡아, 지속가능한 환경경영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한눈에 보는 한국의 전기 발전 역사 ⓒ이나한 제작


지금까지 한국의 전기발전 역사를 짚어보며 한국전력의 시작부터 현재까지를 알아보았습니다. ‘전력수급 안정으로 국민경제 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한국전력의 미션처럼, 한전은 한국사 전반에 걸쳐 국민을 위한 전력공급을 해왔습니다. 앞으로도 국민을 위한 경영과 전력사업을 펼칠 한국전력의 미래가 기대됩니다. 한전에 꾸준한 관심 가져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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