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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史 1 - 건천궁 달밤에 불빛이 오기까지

  

발단은 1882년 미국에 간 보빙사 일행이었다. 민영익, 홍영식, 유길준 등으로 구성된 이 사절단은 도포 입고 갓 쓴 그대로 태평양을 건너 미국에 이른다. 그들은 동서를 횡단하여 ‘화성돈’(워싱턴)에 이른다. 이들의 임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대조선 국왕이 미합중국 대통령에게 보내는 친서를 전달하는 일이었다. 마침 대통령이 출타 중이어서 대통령과 만나기 위해 보빙사는 다시 뉴욕으로 이동한다. 뉴욕의 한 호텔에서 대아비리가(大亞非里加- 조선 사신들이 부른 미합중국 명칭) 대통령을 친견했을 때 조선 보빙사 일행은 일제히 머리가 땅에 닿는 큰절로 좌중을 놀라게 한다. 미합중국 대통령 아더 체스터도 최대한 허리를 굽혀 그에 답례하고 보빙사 대표 민영익과 통역을 사이에 둔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헤어지기 전 일동은 또 한 번 날아갈 듯한 큰절.

  

<보빙사 일행 단체사진, 출처: 네이버 캐스트>

 

상투 틀고 갓 쓴 일행의 큰절 장면은 미국 장안의 화제가 됐고 언론에도 크게 실렸다. 은자(隱者)의 나라에서 온 사신에 대한 호기심은 대단했다. 보빙사가 브로드웨이를 방문했을 때 보빙사를 구경하려는 미국 시민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어 통행이 마비되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들이 안내된 곳 중의 하나가 웨스틴 유니언 전기 회사였다. 전기의 힘으로 기계가 돌아가고 불이 켜지는 것을 본 일행은 크게 놀랐다. 일행 중 유길준은 이렇게 말했다.


“일본에서 전기를 본 적이 있소만 마귀의 장난 같은 것으로 사람이 어쩔 수 있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소. 그런데 전기라는 것도 물처럼 옮겨 부을 수도 있고 통제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됐지요.”

  

<보빙사 일행 단체사진, 출처: 네이버 캐스트>

 

보빙사들의 호기심도 대단했다. 특히 그들이 관심을 둔 것은 전등이었다. 호롱불처럼 꺼지지도 않고 불씨를 간직해야 할 필요도 없는 불. 에디슨의 발명 후 막 뉴욕의 밤을 밝히기 시작한 전등에 보빙사들은 반해 버렸다. 유길준의 말을 더 들어보자. “조선에 전등부터 달아야겠소. 당신들이 전등이 석유등보다 더 값싸고 좋다는 걸 입증했으니 우리는 실험의 필요도 없지. 우리는 당신네가 도달한 지점에서 출발할 거요.”


이들의 욕망은 매우 빠른 속도로 실현된다. 우리나라의 위인전에 빠지지 않는 ‘발명왕’ 에디슨도 한몫을 한다. 보빙사 일행이 에디슨을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에디슨은 극동의 잘 알려지지 않은 왕국에서 온 사신들에게 관심이 많았다. 발명가이기 전에 수완 좋은 사업가였던 에디슨은 조선 주재 미국 공사 푸트에게 "조선에 전등 및 전화를 가설하고 그 운영권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편지를 썼고, 1884년 그 허락이 떨어진다.

  

<전구를 발명한 에디슨, 출처: 네이버 캐스트>

 

하지만 갑신정변이 일어나 모든 것이 ‘올스톱’되는 바람에 한반도에 전등이 켜지는 시간은 그만큼 지연됐다. 하지만 조선 정부는 전기 도입을 결코 잊어버리지는 않았다. 또 고종 임금 자신 밤에 주로 업무를 보는 ‘올빼미 체질’로서 바람이 불어도 꺼지지 않는 신비의 전등을 도입하고자 하는 의지를 불태웠다고 하고.

 

마침내 1886년 말 에디슨이 파견한 전기 기술자 윌리엄 맥케이가 입국하고 1887년 음력 2월 12일, 양력 3월 6일 고종과 민비의 침전이었던 경복궁 건청궁에 국내 최초의 전깃불이 환하게 빛나게 된다. 동양 최고의 설비로서 16촉 광열등 750개를 돌릴 수 있었다는 발전기는 천둥 같은 소리를 내면서 가동하여 어둠에 싸인 경복궁을 대낮같이 밝혔다.

  

<전구를 밝힌 경복궁, 출처: 네이버 캐스트>

 

궁 안은 일대 소란이 일었다. 전깃불에 대한 놀라움은 지위고하를 넘어서는 것이었고, 호기심은 지엄한 법도를 무너뜨렸다. 전깃불을 구경하기 위해서 도무지 건청궁에는 볼일이 없는 상궁과 나인과 내관들이 별 별 핑계를 다 대며 몰려들었다고 한다. 이런 식이었을 것이다. "세자 저하께서 건청궁 전깃불이 꺼졌는지 보고 오랍시오 내 눈으로 확인해야 하오."


구한말 한국에 왔던 외국인들이 공통적으로 주목한 것은 한국인들의 왕성한 호기심이었다. 뭔가 독특한 것을 ‘구경한다’는 것은 한국인들의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었던 것. 그러나 호기심에서 한 발 나아가 그 창의성을 구현하는 쪽으로는 그리 기민하지 못했을 뿐더러, 새롭고 신기한 것에 대해 뜻밖의 거부감을 드러내는 보수적 기질은 그때에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경복궁 내 발전기 가동 위치, 출처: 네이버 캐스트>

  

우선 발전기를 가동하는 데에 사용된 경복궁의 연못 향원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발전 후 뜨거워진 물을 다시 향원으로 쏟아붓자 연못의 물고기들이 허옇게 배를 드러낸 채 떼죽음을 당한 것이다. 이런 류의 재앙은 부덕한 임금에게 하늘이 내리는 경고 신호라고 믿어온 나라의 신하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 또 툭하면 말썽을 부리는 발전기는 그야말로 ‘돈 먹는 하마’였고, 왔다 갔다 말썽이 자심한 전깃불은 ‘건달불’이라는 아름답지 않은 별명을 얻었으며 한자로는 곤달화(困達火 - 얻기 어려운 불)이라는 멸시에 부쳐지기도 했다. 


전등빛 자체에는 무한한 호기심을 보였으나 전기의 원리를 이해하고 체화하려는 노력은 그다지 빛나지 않았던 셈이다. 그리고 기껏 입국했던 기술자 역시 호기심 충만했던 조선인 조수가 기술자의 권총을 매만지다가 낸 오발에 맞아 사망하는 불행한 일이 있었다. 


그래도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한 지 채 8년도 지나지 않은 때, 중국과 일본의 궁전에도 아직 전깃불이 들어오지 않았던 시절임을 생각하면 경복궁에 밝혀진 전깃불의 의미는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전기(電氣)라는 문명의 이기와의 첫 만남이었고, 그 이후 우리의 삶을 규정하게 될 전기가 이 땅의 어둠을 처음으로 밝힌 순간이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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