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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전기의 역사는 18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고종 24년(1887년) 3월 경복궁에 동양 최초의 전기가 들어오는데요. 일본과 중국보다도 무려 2년 정도 빠른 행보였다 합니다.  한국 전기의 발상지를 직접 느껴보기 위해 경복궁을 찾았는데요. 함께 떠나보실까요?

 

 

ⓒ 이진영

 

 

이른 아침, 경복궁을 방문하니 방문객이 적어서 매우 운치 있었는데요. 경복궁의 청취를 즐기며 한반도 땅에서 가장 처음으로 전깃불이 밝아온 장소인 건천궁(乾淸宮)을 향해 갔습니다. 건천궁은 궁 내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해 있는데요. 한적하고 깊숙한 곳에 위치해 있다는 이야기는 미리 들었지만, 실제로 방문해보니 생각보다 많이 멀었답니다.

 

방문 전, 향원정의 아름다운 모습을 기대했는데요. 마침 갔던 날이 향원정 공사 기간이어서 아쉬움을 뒤로하고, 건천궁으로 향했습니다.

 

(위) 건청궁 가는 길목 / (아래) 건청궁의 외관 ⓒ이진영

 

 

건청궁은 경복궁 중건 5년 후인, 고종 10(1873)에 조성된 건물입니다. 고종 내외가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의 간섭에서 정치적으로 자립하기 위해 세웠다고 하는데요. 1873년 흥선대원군의 하야 당시, 왕실의 사비로 몇 십 칸의 건물을 건설했습니다. 현대 사가들은 이를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하는 의지의 표명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건청궁 내부 모습 ⓒ이진영

 

건청궁의 건축양식은 궁궐의 침전 양식과는 달리 양반가옥 살림집을 응용한 점이 인상적이에요. 왕이 사용하는 장안당과 왕비가 머무는 곤녕합, 그리고 장안당 뒤에 서재로 관문각을 지어서 마치 사대부가의 사랑채, 안채, 서재를 연상시키게끔 구성돼 있죠. 규모는 양반가옥 상한선인 99칸의 2.5배인 250칸이나 된답니다. 민간 사대부 집의 형태를 따르면서 화려하고 섬세한 치장을 가미해 세워졌습니다.

 

연못 안에는 본디 취로정이라는 정자가 있었는데요. 건천궁을 창건하면서 그 자리에 향원정을 새로 지었다고 합니다. 부정형의 연못에 둥근 섬을 만들고 육각정자를 세웠으며, 원래는 북쪽으로 다리를 놓아 건청궁과 연결되어 있는 구조였으나 현재는 남쪽으로 놓여있습니다.

 

 

건청궁 내부 모습 ⓒ이진영

 

 

건천궁이 건립된 지 3년이 지난 1876, 경복궁에 큰불이 나자 고종은 창덕궁으로 생활공간을 옮겼습니다. 이후 1885년에 다시 건청궁으로 돌아와 1896년 아관파천 때 러시아공관으로 피신할 때까지 10여 년간 줄곧 이곳에서 지냈다 합니다.

 

일제시대에 들어 경복궁의 건물들이 차례로 파괴되면서 건청궁은 1909년 철거되었는데요. 이 자리에 조선총독부 미술관이 지어졌으며, 한동안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사용되다가 1998년에 철거됐습니다. 문화재청은 건청궁을 원래 모습대로 복원하여 200710월부터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있습니다.

 

건청궁 내부의 전등 모형 ⓒ이진영

 

이 건천궁에 들어선 동양 최초의 전기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바로 경복궁 향원정 연못가의 물고기들을 떼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인데요. 무슨 사연이었을까요?

 


 

1882년 조-미 수호통상조약에 따라서 고종은 미국에 보빙사를 파견했습니다. 민영익, 홍영식, 유길준으로 구성된 이 사절단은, 대조선 국왕이 미합중국 대통령에게 친서를 전달하는 일을 수행하기 위해 미국으로 향했습니다. 도착 후 그들은 전기의 힘으로 기계가 돌아가고 불이 켜지는 광경을 목격하게 됐는데요. 그들은 특히 전등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유길준은 조선에도 전기를 사용하고 싶다. 미국은 전기가 가스나 석유등보다 값싸고 훨씬 편리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더 이상 실험해볼 필요도 없다고 본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건청궁 시등도 ⓒ한국전력 사내보 2018년 2월호 25p

 

 

궁중 전기등 점등계획에 따라 조선 정부가 1884 9 4일 미국 에디슨 전등회사에 발전설비와 전등기기를 발주하여 1887(고종 24) 초에 우리나라 최초의 발전소인 전기등소(電氣燈所)를 설립했습니다. 파견된 전기기사 윌리엄 매케이는 증기 엔진을 이용한 에디슨 다이나모 발전기 3개를 설치했습니다. 16촉광(燭光, 양초 1개 밝기)의 백열등 750개를 밝힐 수 있는 설비였는데요. 이렇게 건천궁의 밤에 전깃불이 밝자 건천궁 뜨락은 이를 구경하기 위해 인산 인해를 이뤘다고 합니다.

 

 

(좌) 토마스 에디슨 / (우) 에디슨 다이나모 발전기 일러스트 ⓒ셔터스톡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연못의 물고기들이 폐사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너무 밝아서 물고기에게 수면 부족이라도 온 것일까요? 이유는 바로 발전기 때문이었습니다. 증기동력으로 작동하는 발전기였기 때문에 뜨겁게 달아오른 증기기관을 식히는 용수가 필요했는데요. 경복궁 향원정 연못의 물을 냉각 용수로 사용하다가 뜨거운 증기수가 연못으로 역류된 거죠. 이로 인해 물의 온도가 상승해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하고 말았답니다.

 

 

물고기들의 떼죽음의 불길한 징조에서 ‘증어 (蒸魚)’

 

전깃불이 묘화다고 ‘묘화 (妙火)’

 

괴상하다며 ‘괴화(怪火)’

 

등불이 건들거리면서 켜짐을 반복하며 사고를 내는 불량함을 빗대 ‘건달불(乾達火)’

 

 

 

이 광경을 목격한 당시 사람들은 증어망국(물고기가 삶아지고 나라가 망한다)’이라는 말과 함께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전깃불은 위와 같은 좋지 않은 별명으로 불리며 경계의 대상이 됐는데요. 그럼에도 전깃불은 계속 운영되었습니다.

 

한편 에디슨 전등 회사에서 파견된 전등 기사 맥케이가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이로 인해 건청궁의 전기 공급이 잠시 중단되는 등, 국내 최초의 전등은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는데요. 그럼에도 1894. 창덕궁에 제2 전등소가 준공되며 그 명맥을 이어나갔습니다.

 


 

백성들의 두려움과 운영상의 다양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전깃불은 고종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당시 조선반도에서는 군사력을 키우며 조선을 노리고 있는 일본과 이를 저지하려 한 청나라, 러시아의 힘 대결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고종은 주위 열강들의 각축장이 되어버린 대한제국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부국강병을 꾀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고종은 부국강병을 위해서 근대화 추진과 함께 전력산업이 필수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를 위해 전등을 도입하고, 이후 본인의 100% 출자를 바탕으로 대한민국 최초의 전기회사까지 설립했죠.

 

(좌) 대한민국 최초의 전기회사, 한성전기 건물 / (우) 1899년 촬영된 한성전기 스탭 ⓒ한국전력 

 

 

 

이렇게 시작된 전기 역사는 오늘날의 한국전력으로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국전력은 현재도 끊임없는 혁신과 기술 개발을 통해 대한민국의 전기 역사를 개척해나가는 중인데요. 흥미진진한 전력사뿐 아니라 전력산업이 나아갈 미래 이야기에 대해서도 꾸준히 소개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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