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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안녕 광안리>, 바다 소리가 들리는 잡지 

"광안리의 삶은 소박하고 일상적인, 내 식으로 표현하자면 매우 중세적인 삶이다. 아직도 도심 한가운데, 도시를 대표하는 해변에서 수십년째 물질을 하고 있는 해녀들은 우리 시대의 인어들이다. (중략) 조개나 장어, 맑은 가리비 국물 따위를 입 안에 넣으면 이것들이 태곳적 이전부터 이 지구라는 별에서 꼼지락대며 살아왔겠구나 하는 생각에 몸 속 여기저기가 뜨거워진다." 


부산에서 발간되고 있는 지역 잡지 <안녕 광안리>의 13호 서문에서 따온 글이다. 부산에 살아본 적 없는 뭍의 사람이라도, 잡지의 제목과 서문을 통해서 이곳이 소금기를 맡을 수 있는 부산이라는 사실은 단박에 감지된다. 


글 속에 등장하는 중세, 해녀, 물질, 소박함, 도심 한가운데 등의 단어들은 2010년대 부산의 현재가 어디쯤 와 있는지, 그곳에 살고 있는 이들이 이 도시를 어떻게 체감하는지 포착할 수 있는 훌륭한 단서다. 해운대에서 맞는 아침 이야기, 해운대 황옥공주동상 가상 인터뷰, 송정에 있는 아데초이 카페 소개, 인천에만 있는 줄 알았던 '부산 송도'의 아미치 레스토랑, 다대포 해수욕장까지, 부산의 다양한 문화가 빼어난 글솜씨와 함께 '대방출'된다. 


<부산 송도 '아미치' 레스토랑 / 출처 : 네이버 캐스트>


지역 잡지 <안녕, 광안리>를 다 읽고 난 뒤, 깨닫게 되는 불편한 진실은 우리가 너무도 많이, '서울 중심'의 문화에 노출되고, 마치 그것이 전부인 냥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혹 서울에 살고 있더라도, 우리가 나누어야 하는 이야기는 지금 발 딛고 있는 나의 터전, '우리 동네'의 이야기여야 하지 않을까? 유명한 연예인 인터뷰도 흥미롭지만, 때로는 나의 단골집 옷 가게나 카페, 만두집을 운영하는 이웃들의 이야기도 궁금하다. 그리고 내 옆의 이웃들 이야기가 '들릴 때' 비로서 나의 삶도 소통되는 것일 테다. 바로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지역의 정체성을 담아내면서 자신들의 색깔과 이야기를 표출하는 잡지들이 지역 곳곳에서 창간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가 바로 여기, '지역'에 있다. 


영등포 <문래동네>, 지역 잡지의 오래된 미래 

수년 전, 하자센터에 있는 '달 시장'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문래동네는 그 첫 인상부터 범상치 않았다. 잡지의 제호는 물론 표지 그림까지 '지역 잡지'다운 포스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역 잡지'라는 이름이 무색할 때부터, 지역 문화라는 확고한 정체성을 가지고 시작한 <문래동네>는 문래동과 관련된 예술인과 철공작 관련 기술인들의 이야기를 주로 담고 있다.


<문래동네 / 출처 : http://blogmoon.co.kr/mullae>


2011년 7월 창간되어 여러 가지 사정을 겪으면서, '살아남은' 지역 잡지 문래동네는 문래동 내부 사람은 물론 외부에 있는 사람들도 '문래동'이라는 지역에 관심을 갖게 만든 문화 전달자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동네 지도와 함께 소개된 문래동네의 다양한 백반집들, 철공작 관련 동네를 보여주는 겨울 화목 난로 소개, 아티스트들과 함께 기거하고 있는 고양이 소개, '발전'이라는 단어 앞에 많은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간판 소개, 그리고 '문래동네'하면 빼놓을 수 없는 지역 미술가들 인터뷰까지 진정한 문래동네의 이야기들이 담뿍 담겨 있다. 


<문래 화이트 박스 갤러리 / 출처 : http://blogmoon.co.kr/mullae>


과월호는 1천 원에 구입할 수 있다. '지역 잡지의 오래된 미래'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잡지인 동시에, 누구나 즐기고, 느낄 수 있는 훌륭한 문화 컨텐츠다. 


수원 골목 잡지 <사이다>, 수원 팔달산 자락 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  

수원은 유서 깊은 동네다. 그 오래된 역사와 그것을 지키고 있는 토박이들의 이야기를 왜 진작 담아내지 않았을까 아쉬워하는 수원 주민들이 많지 않았을까. 그러던 중, 그 갈증을 해소할 지역 잡지 <사이다>가 창간됐다. 이 독특한 이름은 사람과 사람, 자연과 자연, 마을과 마을 등 우리 주변의 수많은 '사이'에 관한 이야기를 담기 위해 만들어진 제호다. 2012년 4월 창간호를 낸 이래, 별 다른 광고도 없이 잘 살아남고 있다. 


<사이다 / 출처 : http://www.sai-da.net/>


수원에서 뿌리내리고 살아온 민중의 생활사를 촘촘히 담아내고자 창간된 <사이다>는 수원 팔달산 자락 사람들의 사람, 자연, 문화에 관한 소소한 이야기들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옆집에 살아도 서로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는 현대인의 소통 부재에, '사이'라는 이름을 다니, 그것만으로도 수원이 밝아지는 기분이다. 사회적 기업이 만든 <사이다>는 한옥의 정취가 그대로 느껴지는 공간에 사무실을 열었다. 수원 사람이라면, 그 간판을 보고도 흐뭇한 미소가 저절로 번질 것 같다. 지역 잡지는 일종의 행복 바이러스다. 


제주도의 리얼을 담은 <리얼 제주 매거진 인>

제주도에서 얼마 전 창간한 <리얼 제주 매거진 인(innn)>은 독특하게도 제주도로 내려간 이방인들이 의기투합하며 만든 지역 잡지다. 현재 봄호와 여름호가 나왔는데, 고사리 로드로 풀어가는 제주도 고사리 이야기, 제주 천연 염색 공방, 해녀 이야기, 해녀 옷 장인, 제주도에 사는 아티스트 이야기 등 볼거리, 읽을거리가 풍성하다.


<리얼 제주 매거진 인 iiin / 출처 : http://blog.naver.com/iiinjeju>


제주 사람들과 제주 외부자 즉 여행자들 모두에게 어필하겠다는 포부가 느껴진다. 잡지 제목인 인 안에는 인이 세개나 붙어있는데, 제주말로 '~있다, ~이다"는 뜻인 '~인"의 의미도 있고, 제주에 인~은 제주에 있다!로 해석된다고 한다. 부피감이 제법 느껴지는 계간지인데, 지역 잡지로는 드물게 유가지 형태다. 제주 지역 사람들에게는 천 원의 할인 혜택이 주어진다고 한다. 역시 그 지역에 살고 볼 일이다.


위에 소개된 지역 잡지 말고도 현재 창간된 지역 잡지들은 무수히 많다. 홍대의 '스트리트 H', 서울 성수동의 '뚝섬 이야기', 서울 종로 서촌의 '시옷', '서촌라이프', 서울 구로의 '구로커', 분당의 'ISSUE'와 '스타일러', 등 이러한 지역 잡지의 붐을 몰아 전국 곳곳에서 자신들의 지역 정체성을 담아내는 이야기들이 창궐할 듯 싶다.


만약 지금 당신이 살고 있는 곳에 '우리 잡지'가 없다면, 동네 이웃에게 넌지시 말을 건네봐도 좋지 않을까. "우리도, 이런 이야기를 담아보지 않을래?" 실제 모든 지역 잡지는 그렇게 시작됐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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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이창민 2014.09.23 13:12
    금천구 잡지도 있나 찾아봐야겠어요!!
  • 김보람 2014.09.23 13:25
    동네 잡지라니, 단순 주거지가 아니라 이야기가 있는 나의 삶의 터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흥미롭네요.
  • lemon 2014.09.23 14:09
    각 지역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니 흥미로운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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