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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羅州)', 그 이름의 역사 





한국전력 등 많은 기업 본사가 위치해 있는 ‘빛가람 혁신도시’로 인해 전라도의 ‘핫 플레이스’로 떠오른 도시, 어디일까요? 맞습니다. 나주입니다!


사실 빛가람 혁신도시가 생기기 전, 사람들에게 나주는 ‘나주 배의 원산지’ 혹은 ‘곰탕이 맛있는 곳’ 등으로 기억돼 왔는데요. 지금은 나주의 인지도가 그리 높진 않지만 역사적으로 나주는 오랫동안 호남 지방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어요.


그런데 갑자기 떠오르는 질문 하나! 나주의 이름은 처음부터 나주였을까요? 궁금증을 해결하고 싶으시다면 저와 함께 역사적 자료를 살펴보며 시간여행을 떠나봐요~!




나주, 고대 마한의 수도였다?


▲ 넓고 비옥한 나주평야 한가운데를 흐르는 영산강.

한강, 금강, 낙동강에 이어 우리나라 4대 강 중 하나이며

호남의 젖줄이자 물류 유통의 중심지였다.



비옥한 토양과 영산강 덕분에 과거부터 풍요의 상징이었던 나주. 그렇다면 이 나주가 한 국가의 수도로 지정된 적은 없었을까요? 이에 대해 역사학자들이 연구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는데요.


나주 지역은 고대 왕국인 마한(馬韓) 중심세력의 거주지였을 거라 추정되고 있습니다. 고대 백제가 다스렸다고 여겨진 영산강 유역 나주 일대. 그런데 이 영산강 유역에 백제와는 다른 독특한 문화를 가진 세력이 존재했다는 이론이 제기됐거든요.


마한6세기 초까지 영산강 일대에 존재했던 고대 왕국이에요.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이 형성되기 전 철기문화를 바탕으로 한 고대 국가가 존재했는데요. 바로 마한, 진한, 변한의 삼한입니다. 삼국시대 이전 한반도 중남부 지방에 형성돼 있던 정치 연맹체죠.


후한서(後漢書)에 따르면 마한은 54개의 소국이었고 변한과 진한은 각각 12개 국으로 형성돼 독립된 지배자에 의해 통치되고 있었다고 해요. 이에 관한 역사 기록을 찾기가 힘들어 고대 사학계에서는 이 삼한에 대해 아직까지도 굉장히 조심스럽게 연구 중이지만요.



▲ 출처 : 국립나주박물관 홈페이지



그럼에도 마한이 존재했다는 증거가 계속 발견되고 있답니다. 대표적인 증거로 올해 발굴 101년을 맞은 국보 295호 ‘나주 신촌리 금동관’을 들 수 있는데요. 당시 백제의 권역에서 발견돼 백제 유물이라 추정했지만, 그 형태가 백제나 신라, 가야 계통의 금관들과 전혀 달라요. 학자들은 이를 근거로 전혀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고대인이 나주 신촌리 금동관을 제작했다고 추정하고 있죠.


고구려·백제·신라에서는 볼 수 없는 모양의 고분들이 영산강 일대에서 발견됐다는 점도 마한의 존재 가능성을 뒷받침해요. 영산강을 따라 480여 개가 넘는 고분들이 존재하는데요. 그중에서도 특히 금동관이 출토된 나주 반남 고분은 높이 6m, 한 변이 30m가 넘는 대형 고분이에요. 이는 고구려·백제·신라 왕릉 급의 고분과 엇비슷한 규모죠.


고분은 보통 한 국가의 도읍지에 세워지는데, 역사 기록에 따르면 한 번도 일국의 수도인 적이 없었던 나주에서 이런 고분이 형성됐다는 사실은 참 놀라워요. 역사학자들은 이 금동관과 고분을 만든 국가가 마한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마한의 영향력 아래에 놓인 지역 중 광주와 관련이 있는 땅을 ‘불미 지국(不彌支國)’이라고 불렀어요. 나주의 반남, 덕산, 대안, 신촌에 소재한 30여기의 고분군을 통해 불미 지국이 나주에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답니다. 이후 백제가 마한 세력을 몰아내고 나주의 주인이 됐는데요. 백제 통치 하에는 나주 지역을 순우리말인 ‘발라’라고 불렀대요.


삼국 통일 후에는 신라가 나주 지역을 장악합니다. 통일신라가 전국을 9주 5소경으로 개편하면서 나주는 9주 중에 하나인 발라주가 됐습니다. 발라주는 전라남도 지역을 관할하는 역할을 담당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발라군으로 강등돼요.



통일신라시대 말기, 경덕왕은 그동안 발라라고 불렸던 나주의 지명을 ‘금성(錦城)’이라고 바꿨습니다. 이후 사회가 혼란스러워지자 견훤은 이 금성을 중심으로 후백제를 건국합니다. 그래서 잠시 견훤이 나주 지역을 장악했죠. 이렇게 나주 지역은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지명도 수차례 바뀌었답니다.



1,100년간 지속된 이름, ‘나주’



그렇다면 ‘나주’라는 이름은 언제 처음 생겼을까요? 여러분도 잘 아는 ‘왕건’이 나주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해요.

견훤이 자신의 본거지를 전주로 옮기고 난 후 왕건은 후고구려의 왕인 궁예의 명령을 받아 나주 지역을 정복합니다. 그러고 나서 왕건은 903년에 지역 이름을 ‘나주(羅州)’로 바꾸죠.



이후 나주는 고려 역사에 여러 번 등장합니다. 우선 왕건이 자신의 부인 장화왕후 오 씨를 만난 장소가 나주고, 거란과의 전쟁 당시 고려 제8대 왕인 현종의 피난처도 나주였거든요. 또한 고려의 지방 행정 조직을 5도 양계로 편성하게 되면서 나주와 전주의 지명이 합쳐져 ‘전라도’라는 도의 이름이 만들어졌답니다. 그만큼 나주는 호남 지역을 대표하는 큰 도시였죠.



나주는 근대까지도 호남의 중심지 역할을 맡았어요. 나주라는 지명은 계속해서 유지됐고요. 1981년에 잠시 옛 이름을 따서 금성시(錦城市)라고 바뀌었지만 1986년부터 다시 나주시(羅州市)로 바뀌어 지금까지 그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5년의 시간을 제외하고 무려 약 1,100년 동안 나주라는 이름을 간직하고 있다니. 무심코 불러왔던 나주라는 이름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지지 않나요?




2018년 올해는 전라도라는 지명이 태어난 지 딱 1,000년이 되는 해랍니다. 그래서인지 나주라는 지명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졌는데요. 나주라는 이름의 변천사를 알고 나니 나주에 대한 애정도 커지지 않나요? 모두들 여름방학이 가기 전에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나주에 한 번 놀러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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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진필 2018.08.21 10:43
    나주라는 지명을 최초로 명명한 사람은 궁예랍니다.
    왕건이 나주지역을 점령한 것은 맞지만 당시 왕이었던 궁예의 명에 의해서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왕건의 나주지역 점령 소식을 들은 궁예가 이제 신라(新羅)도 정벌하여 나의 주(州)로
    삼겠다는 의지를 반영하여 羅州라 칭하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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