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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전기공급史-2편]

일제강점기 수탈의 도구가 된 전기



전기사랑기자단 수도권 1팀 : 권준희, 장은송

 

오늘날 전기는 국민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입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는 전기가 수탈의 도구로 사용되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일제강점기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던 전기 발전사를 알아보겠습니다.


 

최초의 전기회사 - 한성전기의 변화양상


▲고종도 나름 서양열강에 대항하려 노력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전기회사 한성전기회사는 설립 이후 많은 변화를 겪게 됩니다. 한성전기회사는 고종과 미국인 콜브란보스트윅’이 공동계약으로 만든 회사입니다. 하지만 회사가 전적으로 콜브란과 보스트윅에게 위임됐죠. 공사가 끝난 후 콜브란이 과도하게 공사비 잔액을 청구해 회사의 모든 재산 및 특허권을 그에게 신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콜브란은 한성전기회사의 재산과 사업, 전기사업 특허권을 그대로 인수하고 이름을 한미전기로 바꿨습니다.

 

1904년 대한제국은 청일전쟁이라는 큰 전쟁을 겪은 후 회복도 되지 못한 상태에서 러일전쟁을 겪었습니다. 한성전기를 설립한 것은 고종이 황실과 나라를 지키기 위해 미국의 보호를 받고자 했던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미국에 막대한 이권을 넘겨준 꼴이 되었습니다.

 

일본도 한반도에서 일한와사주식회사라는 이름으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이 회사는 한미전기에 맞서 가스사업을 시작했고, 사업을 확장할 기회만을 노리고 있었는데요. 1909623콜브란은 결국 한미전기를 일한와사주식회사에 매각합니다. 이후 일한와사주식회사는 한미전기의 이름을 경성전기로 바꾸게 됩니다.

 

 

일제는 어떻게

전기로 수탈을 자행했을까?

 


▲경성 거리의 불을 밝혔을 가스등

 

그렇다면 일제는 이 전기 회사들을 통해 어떻게 대한제국을 착취할 수 있었을까요? 김광균의 와사등이라는 시에서 조금이나마 그 실상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와사등이란 가스등을 일본의 음차식 표기로 이르던 말입니다. 이 시는 와사등이라는 이국적인 현대 문명을 내세워서 그에 대한 비판과 비애를 자아냅니다. 시 속이 화자는 '내 홀로 어디 가냐는 슬픈 신호냐'라는 시어에서 알 수 있듯이 쓸쓸하고 불안합니다. 이처럼 현대 문명의 도입에도 불구하고 대한제국의 국민들은 시 속의 화자와 같은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한성전기의 소유권을 갖고 있던 콜브란이 일한와사주식회사에게 회사를 매각하자 당시 조선인 종업원들은 이에 반대하여 동맹파업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일제의 탄압으로 별다른 실효를 거두지는 못했죠.

 

일제가 전기회사를 만들고 운영하며 한반도에 전기를 공급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전력사업을 공익사업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전력사업은 식민지 지배 강화와 대륙 침략 확대를 위한 수단에 불과했죠. 일제는 공중 통신 시설의 확충, 서비스 등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것이 그 증거입니다. 오히려 전기요금을 터무니없이 올려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는 데 급급했습니다. 일제의 통신시설 공급 부족으로 인해 한반도의 사업들이 느리게 처리되었으며, 높은 전기요금 탓에 전등 보급률도 현저히 낮았습니다. 그들은 한반도 수탈의 도구로만 전기를 사용하였던 것입니다.


 

조선전업의 탄생

그리고 한국전력공사


▲경성전기 전경

 

조선전업은 1943년 태평양전쟁시기 일제가 발전시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공포한 조선전력관리령에 의해 탄생했습니다. 처음에는 조선수력전기, 조선송전 등 총 3사의 통합으로 시작했습니다. 이후 남조선수력 등 2사를 더 통합하며 1944년 일제강점기 조선의 발전시설을 모두 통합한 회사가 되었습니다. 당시 전체 발전량의 대부분이 북쪽에서 생산되었습니다. 1947년 남북전력협상의 실패로 인해 북으로부터의 전력이 단전되었습니다. 이때의 어려움을 계기로 1949년 발전사업 일원화 조치가 취해져 남선전기, 경성전기 등의 회사가 조선전업으로 일원화되었습니다.

 

이후 전력사업이 조선전업-발전, 경성전기-중부배전, 남선전기-남부배전으로 나누어져 비효율적이라는 의견에 따라 1961년 한국전력주식회사로 3사가 통합되었습니다. 즉, 현재 존재하는 한국전력공사를 비롯한 6개의 자회사 모두 조선전업의 후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반도의 전기공급과 전력사업은 6.25전쟁 이후에 본격적으로 이뤄지게 됩니다. 다음 기사에서는 6.25 전쟁 이후 전기 인프라 복구와 구축에 대한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다음 기사를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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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케니 2018.02.02 14:12
    한국인이라고 표현 해도 되는데 일본인 관점에서 조선인 종업원이라는 표현은 아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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